壬辰년 己酉월 己酉일(1892. 9. 14.), 슈테텐의 요양원. 열다섯 살의 헤르만 헤세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첫 줄은 "존경하는 선생님!"이었고, 끝에는 "슈테텐 감옥의 죄수 H. 헤세"라고 서명했다.
2026. 10. 4.
나丙子정관 · 태일주
비견丙午겁재 · 제왕월주
겁재丁丑상관 · 양년주
子丑合(土)子午沖
목 0화 4토 1금 0수 1
01
한여름 저녁의 해
헤세는 짧은 자서전 「간추린 이력」에서 자기가 태어난 때를 이렇게 적었다. "나는 칠월의 따뜻한 날 이른 저녁에 태어났다. 그 시각의 온도를 나는 평생 나도 모르게 사랑하고 찾아다녔으며, 그것이 없을 때는 몹시 아쉬워했다." 추운 나라에서는 한 번도 살 수 없었고, 제 발로 떠난 여행은 모두 남쪽을 향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헤르만 카를 헤세는 丁丑년 丙午월 丙子일(1877. 7. 2.) 뷔르템베르크 왕국 슈바르츠발트의 소도시 칼프에서 태어났다. 집은 장터 광장 6번지였다. 아버지 요하네스는 러시아 제국 에스토니아의 바이센슈타인에서 온 발트 독일인 선교사였고,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는 인도의 선교 기지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 헤르만 군데르트는 말라얄람어 문법책과 사전을 엮은 선교사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태어날 때부터 러시아 국민이었다.
명식은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 여섯 글자로 세우고, 시각을 알면 두 글자를 더한다. '이른 저녁'은 시각이 아니어서 이 기사는 여섯 글자로 읽는다.
사주의 주인공 격인 일간(日干, 태어난 날의 천간)은 丙이다. 같은 불이라도 등불인 丁과 달리, 丙은 가리지 않고 멀리까지 비추는 한낮의 해다. 태어난 날의 지지는 子, 한겨울의 물이다. 丙에게 子는 정관(正官)이 된다. 일간을 누르는 기운을 관성(官星)이라 하고, 명리는 이 자리를 규율과 윗사람, 몸담는 조직으로 읽는다. 일간이 지지마다 쓰는 힘을 열두 단계로 나눈 12운성(十二運星)으로 보면 丙은 子에서 태(胎), 새 기운이 막 잉태되는 자리에 든다.
태어난 달의 간지는 丙午다. 망종이 들고 스무이레가 지난 날이었다. 달의 천간에도 丙이 서서 명식에는 한낮의 해가 둘이다. 午는 한여름의 불로, 丙과 같은 불이되 음양이 다른 겁재(劫財)다. 丙은 午에서 제왕(帝旺), 가장 힘이 센 자리에 든다. 명리가 강약을 가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이 태어난 달인데, 이렇게 태어난 달이 일간과 같은 기운이면 득령(得令)이라 부른다.
달의 午와 날의 子는 정면으로 마주 서 子午沖을 이룬다. 충(沖)은 흔히 깨지는 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자리가 움직이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한여름의 불과 한겨울의 물이 한 명식 안에서 맞부딪히는 모양이다.
태어난 해의 간지는 丁丑이다. 丁은 촛불 같은 불로 역시 겁재다. 丑은 한겨울의 언 흙, 丙이 제 안에서 꺼내 드러내는 상관(傷官)이다. 丙은 丑에서 양(養), 어머니 품에서 자라는 자리에 든다. 해의 丑과 날의 子는 子丑合(土)을 이룬다.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달의 午는 도화(桃花)다. 도화는 흔히 바람기로만 풀리지만, 명리에서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여섯 글자를 오행으로 세면 불이 넷(丁·丙·午·丙), 흙이 하나(丑), 물이 하나(子)다. 나무와 쇠는 한 글자도 없다. 丙일에 올 수 있는 시주 열두 가지를 모두 넣어 보면 일곱은 신강(身强), 다섯은 중화(中和)로 나온다. 생시가 '이른 저녁'으로만 전하는 이 명식을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이유다. 이른 저녁을 酉시로 보면, 酉시는 신강으로 나오는 일곱 가운데 하나다.
丙에게 나무는 인성(印星), 불을 살리는 기운이고 명리는 이 자리를 어머니와 배움으로 읽는다. 쇠는 재성(財星), 불이 녹여 다스리는 기운이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이 자리를 아내로도 읽었다. 이 기사는 명식에 없던 나무와 쇠가 해와 달과 날의 간지로 들어온 때를 따라간다.
02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네 살 때 가족은 바젤로 옮겨 다섯 해를 살았다. 그사이 아버지가 바젤 시민권을 얻어 온 가족이 스위스 국민이 됐다. 그 무렵 어머니 마리는 네 살배기 아들을 두고 이렇게 적었다. "이 아이에게는 생명력이, 엄청난 힘이, 강한 의지가 있어요. 네 살치고는 참으로 놀라운 머리도 있고요. 이 아이가 어디로 가려는 걸까요?"
가족은 丙戌년(1886) 여름 칼프로 돌아왔다. 그해 봄 첫 대운(大運)이 시작됐다. 대운은 10년마다 바뀌는 운의 흐름으로, 음(陰)의 해에 태어난 남자는 태어난 달의 간지에서 한 칸씩 거꾸로 간다. 헤세의 첫 대운은 乙巳 대운(1886. 4.~1896. 4.)이다. 乙은 풀과 덩굴 같은 나무, 丙에게 정인(正印)이다. 명식에 없던 나무가 대운으로 처음 흘러든 열 해였다. 巳는 초여름의 불로 비견(比肩)이고, 丙은 巳에서 건록(建祿), 제 힘으로 서는 자리에 든다.
그는 「간추린 이력」에 적었다. "열세 살 때부터 내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시인이 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아들을 목사로 키우려 했다. 庚寅년(1890), 그는 뷔르템베르크 주 시험을 준비하러 괴핑겐의 라틴어 학교에 들어갔다. 시험에 붙으면 국비로 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해 늦가을 식구 가운데 그 혼자만 뷔르템베르크 국적을 얻게 했고, 그는 스위스 국적을 잃었다.
辛卯년(1891), 슈투트가르트에서 시험에 붙은 그는 마울브론 수도원의 개신교 신학교에 들어갔다. 입학하고 반년이 채 안 된 壬辰년 癸卯월 戊戌일(1892. 3. 7.), 열네 살의 신학생이 뚜렷한 까닭 없이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는 얼어붙을 듯 추운 밤을 들판에서 보냈고, 이튿날 헌병에게 붙들려 돌아와 감금실에서 여덟 시간을 갇혀 지냈다.
그날의 해와 달에는 관성이 나란히 섰다. 해의 천간 壬은 큰 강 같은 물로 丙에게 편관(偏官)이고, 달의 천간 癸는 빗물 같은 물로 정관이다. 관성은 규율과 몸담는 조직의 자리로 읽는 글자다. 그 자리의 글자가 해와 달의 천간에 겹쳐 선 날, 그는 신학교를 떠났다. 壬은 명식의 丁과 丁壬合(木)을 이뤘다. 날의 간지 戊戌은 두 글자 모두 丙이 낳는 흙, 식신(食神)이다. 식신은 이름 때문에 흔히 먹을 복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재주가 결과물로 나오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날의 戌은 명식의 午와 午戌半合(火)을, 丑과 丑戌刑을 이뤘다.
봄이 끝나 갈 무렵 아버지가 아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부모는 그를 신학자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가 이끄는 바트볼의 요양 시설에 맡겼다. 거기서 그는 권총으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부모는 다시 그를 슈투트가르트 근처 슈테텐의 정신 요양원으로 보냈다.
壬辰년 己酉월 己酉일(1892. 9. 14.), 열다섯 살의 그는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늘 쓰던 다정한 호칭은 사라지고 첫 줄은 "존경하는 선생님!"이었다. "사실 저는 유월에 이미 뒈졌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란 참 이상한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서명은 "슈테텐 감옥의 죄수 H. 헤세"였고, 뒤에 한 줄을 더 붙였다. "이 일에서 누가 정신박약인지 따져 보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편지를 쓴 날의 달과 날은 간지가 똑같다. 두 己는 丙이 꺼내 드러내는 상관이다. 상관은 이름 때문에 흔히 윗사람을 해치는 글자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제 안의 것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두 酉는 가을의 쇠, 丙에게 정재(正財)이고 명식의 丑과 각각 酉丑半合(金)을 이뤘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쇠가 달과 날의 지지로 겹쳐 든 날이다.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酉는 도화다.
그해 말 그는 칸슈타트의 김나지움에 들어갔다. 이듬해 여름 1년 지원병 자격시험에 붙고는 학교를 그만뒀다.
03
탑시계 공장과 서점
에슬링겐의 서점에서 시작한 견습은 사흘 만에 끝났다. 甲午년(1894) 초여름부터 그는 칼프의 페로 탑시계 공장에서 열넉 달 동안 기계공 견습을 했다. 납땜하고 줄질하는 날이 되풀이될수록 그는 다시 책과 글 쪽으로 기울었다.
乙未년 丙戌월 丁酉일(1895. 10. 17.), 열여덟 살의 그는 튀빙겐의 헤켄하우어 서점에서 새로 견습을 시작했다. 그는 책을 대조하고 포장하고 분류하는 일로 열두 시간씩 일했고, 일을 마치면 혼자 공부했다. 일요일은 사람 대신 책과 보냈다. 괴테를 읽었고, 레싱과 실러, 그리스 신화로 넘어갔다.
그해의 천간 乙은 丙에게 정인이다. 인성은 배움의 자리로 읽는 글자다. 해의 未는 상관으로 명식의 丑과 丑未沖, 丑未刑을 함께 이뤘고, 午와는 午未合(火)을 이뤘다. 날의 간지 丁酉에서 酉는 다시 정재로,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이뤘다.
대운은 甲辰 대운(1896. 4.~1906. 4.)으로 넘어갔다. 甲은 곧게 선 큰 나무, 丙에게 편인(偏印)이다. 辰은 물기를 머금은 봄의 흙으로 식신이고, 丙은 辰에서 관대(冠帶), 갓을 쓰고 세상에 나서는 자리에 든다. 辰은 명식의 子와 子辰半合(水)을 이룬다.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辰은 화개(華蓋)다. 화개는 흔히 고독으로만 풀리지만, 명리는 학문과 예술에 파고드는 기운으로도 읽는다.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그는 첫 시집 『낭만의 노래』를 냈다. 600부를 찍었고, 두 해 동안 팔린 것은 54부였다.
己亥년(1899) 가을, 그는 바젤의 라이히 서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壬寅년 甲辰월 丁丑일(1902. 4. 24.), 오래 앓던 어머니 마리가 쉰아홉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그해의 지지 寅과 달의 천간 甲은 둘 다 丙을 살리는 나무, 편인이다. 명리는 인성을 어머니의 자리로도 읽는다. 寅은 명식의 午와 寅午半合(火)을 이뤘다. 날의 丑은 명식의 子와 子丑合(土)을 이뤘다.
04
보덴호의 농가
甲辰년(1904), 소설 『페터 카멘친트』가 베를린의 S. 피셔 출판사에서 나왔다. 처음으로 큰 성공을 거둔 책이었고, 그는 이제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게 됐다. 그해의 천간 甲은 편인, 지지 辰은 식신이다.
甲辰년 辛未월 戊辰일(1904. 8. 2.), 그는 바젤의 사진가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다. 그보다 아홉 살 위인 그녀는 스위스에서 정식 교육을 받은 첫 직업 사진가로 꼽힌다. 그녀의 부모는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날 달의 천간 辛은 쇠, 丙에게 정재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정재를 아내의 자리로 읽었다. 명식에 없던 그 글자가 달의 천간으로 들어, 명식의 두 丙과 각각 丙辛合(水)을 이룬 날이다. 달의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 丑未刑을 이뤘다. 해와 날의 辰은 명식의 子와 각각 子辰半合(水)을 이뤘다.
부부는 보덴호 기슭의 외딴 마을 가이엔호펜에 수도도 전기도 없는 농가를 빌려 들어갔다. 아들 브루노와 하이너, 마르틴이 차례로 태어났다.
대운은 癸卯 대운(1906. 4.~1916. 4.)으로 바뀌었다. 癸는 정관, 卯는 풀과 덩굴 같은 나무로 정인이다. 丙은 卯에서 목욕(沐浴)에 든다. 卯는 명식의 子와 子卯刑을 이룬다. 丙午년(1906)에는 마울브론 시절을 녹인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가 나왔다.
그는 자주 혼자 떠났다. 辛亥년 丙申월 己卯일(1911. 9. 6.), 그는 화가 친구 한스 슈투르체네거와 함께 제노바에서 배에 올랐다. 조부모와 부모가 선교사로 일한 인도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배는 실론에 닿았고, 그는 페낭과 싱가포르, 수마트라를 돌았다. 정작 인도 땅은 밟지 못했다.
그해의 천간 辛은 정재로, 명식의 두 丙과 각각 丙辛合(水)을 이뤘다. 달의 申은 쇠로 편재(偏財)이고, 명식의 子와 申子半合(水)을 이뤘다. 해의 亥는 큰 물, 丙에게 편관이다.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亥는 역마(驛馬), 자리를 옮기는 신살이다.
壬子년(1912), 가족은 가이엔호펜 집을 팔고 스위스 베른 교외로 옮겼다. 사는 곳을 바꿔도 부부 사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05
친구들이여, 이런 곡조 말고
전쟁이 터지자 그는 독일군에 지원했다가 복무에 맞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베른의 독일 공사관에서 외국 수용소의 독일군 포로들에게 책을 모아 보내는 일을 맡았다.
甲寅년 甲戌월 癸巳일(1914. 11. 3.),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에 그의 글 「오 친구들이여, 이런 곡조는 말고」가 실렸다. 베토벤 9번 교향곡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빌려, 독일 지식인들에게 민족주의의 증오에 휩쓸리지 말자고 호소한 글이었다. 독일 신문들이 그를 공격했고 증오의 편지가 날아들었으며, 오랜 친구들이 등을 돌렸다.
그날의 해와 달에는 甲이 둘 섰다. 甲은 丙에게 편인이고, 해의 지지 寅도 편인이다. 명식에 없던 나무가 한날 세 겹으로 든 날이다. 寅은 명식의 午와 寅午半合(火)을 이뤘고,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역마다. 달의 戌은 명식의 午와 午戌半合(火)을, 丑과 丑戌刑을 이뤘다.
乙卯년(1915)에는 그를 배신자로 모는 기사까지 나왔다. 그는 「간추린 이력」에 그 일을 이렇게 적었다. "꽤 수줍게 내놓은 이 하소연 때문에 나는 조국의 신문에서 배신자로 선고되었다. 나를 고발한 그 기사를 고향의 신문 스무 곳이 옮겨 실었고, 언론계에 많다고 믿었던 친구들 가운데 감히 내 편에 선 사람은 둘뿐이었다."
丙辰년 辛卯월 甲辰일(1916. 3. 8.), 아버지 요하네스가 세상을 떠났다. 막내 마르틴은 뇌막염을 앓았고, 아내의 마음의 병은 깊어 갔다. 무너진 그는 포로 지원 일을 멈추고, 그해 늦봄부터 루체른 근처 존마트 요양원에서 카를 융의 제자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
그날 달의 천간 辛은 정재로, 명식의 두 丙과 각각 丙辛合(水)을 이뤘다. 달의 卯는 정인으로 명식의 子와 子卯刑을 이뤘다. 한 달 뒤 대운은 壬寅 대운(1916. 4.~1926. 4.)으로 바뀌었다. 壬은 편관으로 명식의 丁과 丁壬合(木)을 이룬다. 寅은 편인이고 丙은 寅에서 장생(長生), 새로 태어나는 자리에 든다. 寅은 명식의 午와 寅午半合(火)을 이룬다.
丁巳년(1917) 가을, 그는 세 주 동안 몰아치듯 소설 한 편을 썼다. 『데미안』이었다. 己未년(1919), 책은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젊은 독자들이 이름난 '늙은 아저씨'의 이름 때문에 책을 멀리하지 않게 하려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신인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이 책은 폰타네상을 받았고, 이듬해 정체가 드러나자 그는 상을 돌려줬다.
토마스 만은 훗날 이렇게 적었다. "『데미안』이 준 전기 충격 같은 효과는 잊을 수 없다. 그 책은 섬뜩할 만큼 정확하게 시대의 신경을 건드렸다." 젊은이들은 자기들 가운데서 대변자가 나왔다고 믿었지만, 그 사람은 이미 마흔두 살이었다고 만은 덧붙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己未年06
클링조어의 발코니
전쟁이 끝났을 때 결혼은 이미 깨져 있었고, 세 아들은 친구 집과 기숙학교로 흩어졌다. 봄에 그는 혼자 스위스 남쪽 티치노로 내려갔다. 己未년 己巳월 癸亥일(1919. 5. 11.), 그는 루가노 호수 위 몬타뇰라 마을의 작은 성 같은 건물 카사 카무치에 작은 방 몇 칸을 빌렸다.
그날의 해와 달에는 己가 둘 섰다. 己는 논밭의 흙, 丙에게 상관이다. 해의 未도 상관이고, 명식의 丑과 丑未沖, 丑未刑을 이뤘다. 달의 巳는 비견이고, 丙은 巳에서 다시 건록에 든다. 날의 亥는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역마다.
티치노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그렸다. 그 여름은 이듬해 나온 소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이 됐고, 주인공 화가 클링조어의 발코니는 카사 카무치의 발코니였다.
壬戌년(1922), 『싯다르타』가 나왔다. 1부와 2부 사이에 그는 한 해 반 가까이 글이 나오지 않는 위기를 겪었다. 그해의 천간 壬은 편관으로 명식의 丁과 丁壬合(木)을 이뤘다. 지지 戌은 식신이고 명식의 午와 午戌半合(火)을, 丑과 丑戌刑을 이뤘다. 癸亥년(1923), 그는 마리아와 이혼했다.
癸亥년 乙丑월 己丑일(1924. 1. 11.), 그는 스무 살 아래의 가수 루트 벵거와 결혼했다. 달력은 해를 넘겼지만 입춘 전이라 간지로는 아직 癸亥년이다. 달과 날의 지지 丑은 상관으로, 명식의 子와 각각 子丑合(土)을 이뤘다.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丑은 화개다. 달의 천간 乙은 정인이다.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丁卯년 甲辰월 戊子일(1927. 4. 24.), 아내의 요청으로 두 사람은 바젤에서 이혼했다. 그날의 子는 명식의 午와 子午沖을, 丑과 子丑合(土)을 이뤘다.
같은 丁卯년(1927), 쉰 살이 된 그는 『황야의 이리』를 냈다. 내면이 사람과 늑대로 갈라진 중년 남자 하리 할러의 이야기였다. 훗날 스웨덴 한림원의 안데르스 외스털링은 이 책을 두고 어쩌면 위험하고 운명적이지만 동시에 해방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07
유리알 유희
대운은 辛丑 대운(1926. 4.~1936. 4.)으로 넘어갔다. 辛은 정재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쇠가 대운의 천간으로 처음 들어, 명식의 두 丙과 각각 丙辛合(水)을 이룬다. 丑은 상관으로 명식의 子와 子丑合(土)을 이룬다. 丙은 丑에서 양에 든다.
니논 돌빈은 체르노비츠에서 태어난 미술사학자로, 열네 살 무렵 『페터 카멘친트』를 읽고 그에게 처음 편지를 쓴 사람이었다.
辛未년 己亥월 癸酉일(1931. 11. 14.), 그는 열여덟 살 아래의 니논과 세 번째로 결혼했다. 그해 두 사람은 카사 카무치를 떠나 친구 한스 콘라트 보드머가 지어 평생 쓰게 해 준 '붉은 집'으로 옮겼다. 해의 천간 辛은 정재로 명식의 두 丙과 각각 丙辛合(水)을 이뤘다. 날의 酉도 정재로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이뤘다. 아내의 자리로 읽는 글자가 해의 천간과 날의 지지에 함께 든 날이다. 달의 亥는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역마다.
그해 그는 마지막 장편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癸酉년(1933), 망명길에 오른 브레히트와 토마스 만이 차례로 몬타뇰라에 들렀다. 그 뒤 그의 책은 독일에서 '바라지 않는 책'이 됐다. 그는 나치가 박해하는 유대인 작가들의 책을 서평으로 소개하며 버텼다.
대운은 庚子 대운(1936. 4.~1946. 4.)으로 바뀌었다. 庚은 쇠, 丙에게 편재다. 子는 정관이고 명식의 午와 子午沖을, 丑과 子丑合(土)을 이룬다.
壬午년(1942), 나치 선전부는 새 장편을 독일에서 찍지 못하게 했다. 癸未년 癸亥월 庚辰일(1943. 11. 18.), 『유리알 유희』가 취리히의 프레츠 운트 바스무트 출판사에서 나왔다. 노벨상을 받던 해에 쓴 짧은 자전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히틀러 정권과 2차 세계대전의 세월을, 『유리알 유희』에 바친 열한 해의 작업으로 견뎌 냈다."
그날의 해와 달에는 癸가 둘 섰다. 癸는 정관이다. 날의 천간 庚은 편재, 대운의 천간과 같은 글자다. 날의 辰은 식신으로 명식의 子와 子辰半合(水)을 이뤘고,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화개다.
08
스톡홀름에 가지 않은 사람
대운은 己亥 대운(1946. 4.~1956. 4.)으로 넘어갔다. 己는 상관, 亥는 편관이고 丙은 亥에서 절(絶)에 든다. 절은 이름 때문에 끊어져 끝나는 자리로 오해받지만, 명리는 앞의 기운이 끊기고 새 기운을 받을 준비를 하는 자리로 읽는다. 그해 그는 프랑크푸르트시의 괴테상을 받았다.
丙戌년 己亥월 壬辰일(1946. 11. 14.), 스웨덴 한림원은 그해 노벨 문학상을 그에게 주기로 했다. "점점 더 대담하고 깊어지면서 고전적 인문주의의 이상과 높은 문체를 보여 준 영감 어린 작품들에 대하여." 날의 천간 壬은 편관으로 명식의 丁과 丁壬合(木)을 이뤘다. 날의 辰은 명식의 子와 子辰半合(水)을 이뤘다.
예순아홉 살의 그는 축하 편지와 전보가 쏟아질 것을 내다보고 아내 니논에게 이렇게 썼다. "그 빌어먹을 잡동사니는 악마나 가져가라지."
丙戌년 庚子월 戊午일(1946. 12. 10.), 스톡홀름 시청의 노벨 연회에 그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스위스 서부에 요양을 가 있었다. 스위스 공사 앙리 발로통이 그의 인사말을 대신 읽었다. "나는 '거창하게 단순화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품질과 흉내 낼 수 없는 솜씨와 하나뿐인 것을 사랑합니다."
그날 달의 간지 庚子에서 庚은 편재, 子는 정관이다. 子는 명식의 午와 子午沖을, 丑과 子丑合(土)을 이뤘다. 날의 午는 명식의 子와 다시 子午沖을, 명식의 午와 午午自刑을 이뤘다. 같은 글자가 겹칠 때 서는 형(刑)을 자형(自刑)이라 한다. 형은 '형벌'로만 풀려 겁을 주지만, 명리에서는 서로 깎고 다듬는 관계로 먼저 읽는다. 명식의 달과 날에 마주 선 午와 子가, 그날의 달과 날에는 자리를 바꿔 마주 섰다.
노년의 그는 몬타뇰라에서 정원을 가꾸고 수채화를 그리며, 날마다 쏟아지는 편지에 손수 답장을 썼다. 대운은 戊戌 대운(1956. 4.~1966. 4.)으로 넘어갔다. 戊와 戌은 두 글자 모두 식신이고, 丙은 戌에서 묘(墓), 기운을 거두어 곳간에 넣는 자리에 든다.
辛丑년(1961) 겨울에 걸린 독감에서 그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모르는 사이 오래 백혈병을 앓고 있었고, 벨린초나의 병원에서 수혈을 받았다. 마지막 주에 그는 시 「꺾인 나뭇가지의 삐걱임」을 세 번 고쳐 썼다.
壬寅년 戊申월 己卯일(1962. 8. 9.), 그는 몬타뇰라의 집에서 잠든 채 뇌졸중으로 숨을 거뒀다. 여든다섯 살이었다. 아침 식사에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니논이 늘 자던 자세 그대로 누운 그를 찾아냈다. 이틀 뒤 그는 젠틸리노의 산타본디오 묘지, 오랜 친구 후고 발의 무덤 가까이에 묻혔다.
그날 해의 寅은 편인, 날의 卯는 정인이다. 달의 申은 편재로 명식의 子와 申子半合(水)을 이뤘다. 명식에 없던 나무와 쇠가 한날 모두 든 날이었다. 해의 천간 壬은 명식의 丁과 丁壬合(木)을, 해의 寅은 명식의 午와 寅午半合(火)을 이뤘다. 『데미안』 첫머리에 그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나는 그저 내 안에서 저절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살아 보려 했을 뿐이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