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戌년 丁酉월 丁亥일(1946. 9. 10.), 캘커타에서 다르질링으로 올라가는 기차. 서른여섯 살의 수녀 테레사는 그날 들은 것을 훗날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 불렀다. 수녀원을 떠나 가장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살라는 부르심이었다.
2026. 10. 4.
나癸亥겁재 · 제왕일주
상관甲申정인 · 사월주
정인庚戌정관 · 쇠년주
목 1화 0토 1금 2수 2
01
꽃봉오리
庚戌년 甲申월 甲子일(1910. 8. 27.),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던 발칸의 도시 스코페에서 갓난 여자아이가 세례를 받았다. 전날 태어난 니콜라와 드라나 보야지우 부부의 막내딸이었다. 세례받은 이름은 아녜저 곤제였다. 곤제는 알바니아 말로 꽃봉오리라는 뜻이다. 아이는 자라서 세례받은 날을 자기의 '진짜 생일'로 여겼다.
명식은 세례받은 날이 아니라 태어난 날로 세운다. 곤제가 태어난 날은 庚戌년 甲申월 癸亥일(1910. 8. 26.)이고, 몇 시에 태어났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명식은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 여섯 글자로 세우고, 시각을 알면 두 글자를 더한다. 이 기사는 여섯 글자로 읽는다.
사주의 주인공 격인 일간(日干, 태어난 날의 천간)은 癸다. 같은 물이라도 강과 바다처럼 큰 물인 壬과 달리, 癸는 빗물과 이슬에 가깝다. 한곳에 고여 크게 출렁이기보다 넓게 흩어져 마른 땅을 적시는 물이다. 태어난 날의 지지는 亥, 겨울 들머리의 큰 물이다. 癸에게 亥는 같은 물이되 음양이 다른 겁재(劫財)다. 명리는 겁재를 곁에 나란히 서서 몫을 나누는 또 하나의 나로 읽는다. 일간이 지지마다 쓰는 힘을 열두 단계로 나눈 12운성(十二運星)으로 보면 癸는 亥에서 제왕(帝旺), 가장 힘이 센 자리에 든다.
태어난 달의 간지는 甲申이다. 입추와 백로 사이, 가을의 첫 달이다. 申은 바위 속 쇳덩이 같은 쇠이고, 쇠가 물을 낳으니 癸에게 申은 정인(正印)이다. 인성은 흔히 문서 운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는 배움과 보살핌의 자리로 먼저 읽는다. 명리가 강약을 가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이 태어난 달인데, 이렇게 달의 지지가 일간을 돕는 기운이면 득령(得令)이라 부른다. 달의 천간 甲은 곧게 선 큰 나무, 癸가 제 안에서 꺼내 드러내는 상관(傷官)이다.
태어난 해의 간지는 庚戌이다. 庚은 광산에서 막 캐낸 원석 같은 쇠로, 달의 申과 같은 정인이다. 戌은 불씨를 품은 가을 끝의 흙이다. 흙은 물길을 막고 다스리니 癸에게 戌은 정관(正官)이 된다. 관성(官星)은 몸담는 조직과 지켜야 할 규율의 자리이고, 여자의 명식에서는 남편의 자리로도 읽는다. 癸는 戌에서 쇠(衰), 한창때를 지나 힘을 고르는 자리에 든다.
여섯 글자 사이에는 합도 충도 형도 서지 않는다. 신살은 하나 선다. 태어난 해의 戌을 기준으로 달의 申은 역마(驛馬), 자리를 옮기는 신살이다.
02
레트니체의 丁亥일
곤제가 여덟 살 무렵, 아버지 니콜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알바니아계 공동체의 정치에 몸담던 그는 베오그라드의 정치 모임에 다녀온 뒤 숨졌고, 독살됐을 거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한다. 넉넉하던 살림은 하루아침에 기울었고, 어머니 드라나가 남은 아이들을 엄하면서도 다정하게 길렀다.
대운(大運)은 10년마다 바뀌는 운의 흐름으로, 양(陽)의 해에 태어난 여자는 태어난 달의 간지에서 한 칸씩 거꾸로 간다. 곤제의 첫 대운은 다섯 살 무렵 시작된 癸未 대운(1916. 6.~1926. 6.)이다. 대운의 천간 癸는 일간과 같은 글자, 비견(比肩)이다. 대운의 지지 未는 한여름 끝의 마른 흙으로 癸에게 편관(偏官)이고, 명식의 戌과 未戌刑을 이룬다. 형(刑)은 '형벌'로만 풀려 겁을 주는데, 명리에서는 서로 깎고 다듬는 관계로 먼저 읽는다. 태어난 날의 亥를 기준으로 未는 화개(華蓋)다. 화개는 흔히 고독으로만 풀리지만, 명리는 학문과 종교에 파고드는 기운으로도 읽는다.
열두 살 무렵, 곤제는 평생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부르심을 처음 느꼈다. 벵골로 건너간 선교사들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때였다. 가족은 자주 스코페 북쪽 검은 산 자락, 지금은 코소보 땅인 레트니체의 성모 성지로 순례를 다녔다.
戊辰년 庚申월 丁亥일(1928. 8. 15.), 열일곱 살의 곤제는 레트니체의 검은 성모 앞에서 기도하며 마음을 굳혔다. 수녀가 되어 인도로 가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날 해의 천간 戊는 두꺼운 흙으로 정관이고, 일간 癸와 戊癸合(火)을 이뤄 불을 만들었다. 해의 지지 辰은 명식의 戌과 정면으로 부딪혀 辰戌沖을 이뤘다. 충(沖)은 흔히 깨지는 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자리가 움직이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날의 간지 丁亥에서 丁은 촛불 같은 불, 癸에게 편재(偏財)다. 날의 亥는 명식의 亥와 겹쳐 亥亥自刑을 이뤘다.
여섯 글자를 오행으로 세면 쇠가 둘(庚·申), 물이 둘(癸·亥), 나무와 흙이 하나씩(甲·戌)이고 불은 없다. 癸에게 불은 재성(財星), 물이 다스려 끄는 기운이다. 명리는 이 자리를 재물과 손에 쥐는 몫으로 읽는다. 강약도 저울에 올려 본다. 득령한 癸 곁에 같은 물과 물을 낳는 쇠가 모였다. 癸일에 올 수 있는 시주 열두 가지를 모두 넣어 보면 여섯은 신강(身强), 여섯은 중화(中和)로 나온다. 생시가 남지 않은 명식을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이유다. 어느 쪽으로 읽든 빈자리는 불이다. 이 기사는 그 불이 대운과 해와 달과 날의 간지로 들어온 때를 따라간다.
03
라스판햄에서 캘커타까지
곤제는 戊辰년(1928) 가을 스코페를 떠나 아일랜드 라스판햄의 로레토 수녀회로 갔다. 인도의 로레토 수녀들이 영어로 가르쳤기 때문에 먼저 영어를 익혀야 했다. 그곳에서 받은 수도명이 테레사다. 선교사들의 수호성인인 리지외의 테레즈에게서 따온 이름이었다. 같은 이름을 고른 수녀가 이미 있어서 철자는 스페인식으로 적었다. 집을 떠난 곤제는 그 뒤로 어머니와 언니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해 겨울 인도로 가는 배에 오른 테레사는 戊辰년 乙丑월 辛亥일(1929. 1. 6.) 캘커타에 닿았다. 달력은 해를 넘겼지만 입춘 전이라 간지로는 아직 戊辰년이다. 그날 이른 새벽 캘커타 시각으로 소한(小寒)이 들어 달의 간지도 乙丑으로 바뀌었다. 乙은 풀과 덩굴 같은 나무, 癸가 낳는 식신(食神)이다. 식신은 이름 때문에 흔히 먹을 복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재주가 결과로 나오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乙은 명식의 庚과 乙庚合(金)을, 丑은 명식의 戌과 丑戌刑을 이뤘다.
대운은 壬午 대운(1926. 6.~1936. 6.)이었다. 壬은 큰 물로 癸에게 겁재이고, 午는 한여름의 불로 편재다. 명식에 없던 불이 대운의 지지로 들어와 10년을 흘렀다. 午는 명식의 戌과 午戌半合(火)을 이뤄 불을 모은다. 癸는 午에서 절(絶)에 든다. 절은 이름 때문에 끊어져 끝나는 자리로 오해받지만, 명리는 앞의 기운이 끊기고 새 기운을 받을 준비를 하는 자리로 읽는다.
수련은 히말라야 아래 다르질링에서 받았다. 테레사는 그곳에서 벵골어를 배우고, 수녀원 가까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辛未년 癸巳월 己卯일(1931. 5. 24.), 그는 첫 서원을 했다. 서원한 달의 지지 巳는 불이고, 癸에게 정재(正財)다. 巳는 명식의 亥와 정면으로 부딪혀 巳亥沖을 이뤘다. 날의 간지 己卯에서 卯는 명식의 戌과 卯戌合(火)을 이뤄 다시 불을 만들었다. 癸는 卯에서 장생(長生), 새로 태어나는 자리에 든다.
04
담장 안의 스무 해
첫 서원을 마친 테레사는 캘커타 동쪽 엔탈리의 로레토 수녀원으로 옮겼다. 수녀원 담장 안에 있는 세인트메리 학교에서 벵골 여학생들을 가르쳤다. 丁丑년 乙巳월(1937. 5.), 그는 종신 서원을 하고 자기가 예수의 '영원한 배우자'가 됐다고 말했다. 로레토의 관습대로 이때부터 이름 앞에 '마더'가 붙었다.
대운은 한 해 전 辛巳 대운(1936. 6.~1946. 6.)으로 바뀌어 있었다. 辛은 불에 다듬은 쇠로 편인(偏印)이고, 巳는 정재다. 巳는 명식의 亥와 巳亥沖을, 申과 巳申合(水)과 巳申刑을 이룬다. 종신 서원을 한 해의 丁은 편재였고, 달의 巳는 다시 정재였다.
甲申년(1944), 테레사는 세인트메리 학교의 교장이 됐다. 그해의 간지 甲申은 그가 태어난 달의 간지와 똑같다. 로레토에서 보낸 스무 해 가까운 시간은 깊은 행복으로 가득했다고 교황청의 공식 전기는 적는다. 담장 밖의 캘커타는 사정이 달랐다. 癸未년(1943)에는 벵골 대기근이 도시를 덮쳐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고, 丙戌년 丙申월(1946. 8.)에는 '직접 행동의 날'을 시작으로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의 유혈 충돌이 번졌다. 주위의 가난을 보며 테레사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05
부르심 속의 부르심
丙戌년 丁酉월 丁亥일(1946. 9. 10.), 테레사는 해마다 하던 피정을 하러 캘커타에서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 기차 안에서 그는 훗날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 이름 붙인 것을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들었는지는 끝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남긴 말은 이렇다. "수녀원을 떠나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살며 그들을 도와야 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따르지 않으면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었을 겁니다."
석 달 전 대운이 庚辰 대운(1946. 6.~1956. 6.)으로 바뀌어 있었다. 庚은 정인이고, 辰은 물기를 머금은 봄의 흙으로 정관이다. 辰은 명식의 戌과 辰戌沖을 이룬다. 명리가 뿌리와 출신의 자리로 읽는 태어난 해의 지지가 대운과 정면으로 마주 선 10년이다.
그날의 간지를 차례로 보면 해의 丙은 한낮의 해 같은 불로 정재이고, 달과 날의 丁은 편재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불이 해와 달과 날의 천간을 모두 채운 날이다. 날의 간지 丁亥는 열일곱 살의 곤제가 레트니체에서 마음을 굳힌 날의 간지와 같다. 이번에도 날의 亥가 명식의 亥와 亥亥自刑을 이뤘다.
수녀원을 떠나려면 교회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영적 지도 신부와 캘커타의 페리에 대주교가 거의 두 해 동안 지켜보고 시험한 끝에 길을 열어 주었다. 戊子년 庚申월 甲戌일(1948. 8. 17.), 테레사는 처음으로 푸른 테를 두른 흰 무명 사리를 입고 로레토 수녀원의 문을 나섰다. 인도가 독립한 뒤, 그는 인도 국적도 얻었다.
그날 해의 천간 戊는 정관으로 일간 癸와 戊癸合(火)을 이뤄 불을 만들었다. 해의 지지 子는 癸와 같은 물, 비견이고 명식의 申과 申子半合(水)을 이뤘다. 태어난 날의 亥를 기준으로 子는 도화(桃花)다. 도화는 흔히 바람기로만 풀리지만, 명리에서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달의 간지 庚申은 레트니체의 날과 같은 달 간지이고, 申은 태어난 해의 戌을 기준으로 다시 역마다.
테레사는 파트나의 의료선교수녀회에서 짧게 간호의 기초를 익혔다. 캘커타로 돌아와서는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 수녀원에 몸을 붙였다. 戊子년 甲子월 庚辰일(1948. 12. 21.), 그는 처음으로 빈민가에 들어갔다. 집집마다 찾아가 아이들의 헌데를 씻기고, 길에 쓰러져 앓는 노인을 돌보고, 굶주림과 결핵으로 죽어 가던 여자를 간호했다. 그날 날의 간지 庚辰은 그때 흐르던 대운의 간지와 똑같다. 날의 辰은 명식의 戌과 다시 辰戌沖을 이뤘다.
수입은 한 푼도 없었다. 테레사는 먹을 것과 쓸 것을 얻으러 다녔고, 로레토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과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 무렵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오늘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은 얼마나 고될까요. 머물 집을 찾아 팔다리가 쑤실 때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같은 일기에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썼다.
06
순결한 마음의 집
몇 달 뒤부터 세인트메리 학교의 옛 제자들이 한 사람씩 찾아와 곁에 섰다. 庚寅년 乙酉월 乙亥일(1950. 10. 7.),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 캘커타 대교구 안에 새 수도회 '사랑의 선교회'가 정식으로 세워졌다. 수녀들은 정결과 청빈과 순명에 더해 네 번째 서원을 했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온 마음으로, 값을 받지 않고 봉사하겠다는 서원이었다.
그날 해의 천간 庚은 태어난 해의 천간과 같은 정인이고, 해의 지지 寅은 癸가 낳는 나무, 상관이다. 寅은 명식의 申과 정면으로 부딪혀 寅申沖과 寅申刑을 함께 이루고, 亥와는 寅亥合(木)을 이뤘다. 달과 날의 乙은 식신이고, 둘 다 명식의 庚과 乙庚合(金)을 이뤘다.
壬辰년(1952), 테레사는 시 당국의 도움을 받아 첫 호스피스를 열었다. 칼리 여신의 사원 곁에서 순례자 숙소로 쓰이던 빈 건물이었다. 이름은 '순결한 마음의 집'이라는 뜻의 니르말 흐리다이로 지었다. 길에서 데려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신앙대로 마지막을 맞았다. 무슬림은 쿠란을 읽고, 힌두교도는 갠지스강의 물을 받고, 가톨릭 신자는 병자성사를 받았다. "짐승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사랑받고 환영받으며 천사처럼 죽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테레사가 한 말이다. 그해의 壬은 겁재, 辰은 정관이다. 辰은 명식의 戌과 辰戌沖을 이뤄, 대운의 辰과 함께 두 겹으로 戌과 마주 섰다.
乙未년(1955)에는 고아와 집 없는 아이들을 받는 '어린이의 집' 니르말라 시슈 바반을 열었다.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집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샨티 나가르로 불렀다.
대운은 己卯 대운(1956. 6.~1966. 6.)으로 넘어갔다. 己는 논밭의 흙, 편관이고 卯는 식신이다. 己는 명식의 甲과 甲己合(土)을, 卯는 명식의 戌과 卯戌合(火)을, 亥와 亥卯半合(木)을 이룬다. 태어난 해의 戌을 기준으로 卯는 도화이고, 癸는 卯에서 장생에 든다. 壬寅년(1962) 인도 정부가 파드마 슈리 훈장을 주었고, 같은 해 라몬 막사이사이상이 뒤따랐다.
乙巳년(1965), 수녀 다섯 명이 베네수엘라로 건너가 인도 밖의 첫 집을 열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그해 초 수도회에 내린 찬미 교령이 길을 텄다.
대운은 戊寅 대운(1966. 6.~1976. 6.)으로 바뀌었다. 戊는 정관으로 일간과 戊癸合(火)을 이뤄 불을 만들고, 寅은 상관으로 명식의 申과 寅申沖과 寅申刑을, 亥와 寅亥合(木)을 이룬다. 己酉년(1969), 영국 BBC가 언론인 맬컴 머거리지의 다큐멘터리 「하느님을 위한 아름다운 것」을 내보냈다. 이 다큐멘터리로 테레사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졌다. 辛亥년(1971)에는 바오로 6세가 처음 제정된 요한 23세 평화상을 그에게 주었다.
07
오슬로의 만찬
대운은 丁丑 대운(1976. 6.~1986. 6.)으로 넘어갔다. 丁은 편재, 丑은 언 땅의 흙으로 편관이다. 丑은 명식의 戌과 丑戌刑을 이룬다. 명식에 없던 불이 대운의 천간으로 들어와 10년을 흐른다. 癸는 丑에서 관대(冠帶), 갓을 쓰고 세상에 나서는 자리에 든다.
壬戌년(1982)
己未년 甲戌월 丁巳일(1979. 10. 17.),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그해 노벨 평화상을 테레사에게 준다고 발표했다. 고통받는 인류를 도운 공로였다. 위원회의 발표문은 30년 전 그가 가르치던 학교를 떠나 빈민가로 들어간 일부터 짚었다. 그날 날의 丁은 편재, 巳는 정재로 두 글자가 모두 불이었다. 巳는 명식의 亥와 巳亥沖을, 申과 巳申合(水)과 巳申刑을 이뤘고, 태어난 날의 亥를 기준으로 역마였다. 달의 간지 甲戌은 그가 흰 사리를 입고 로레토의 문을 나선 날의 날 간지와 같다.
시상식은 己未년 丙子월 辛亥일(1979. 12. 10.) 오슬로에서 열렸다. 테레사는 수상자를 위한 축하 만찬을 열지 말고 그 비용을 인도의 가난한 이들에게 써 달라고 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하면 되느냐는 물음에는 "집에 가서 가족을 사랑하세요"라고 답했다. 시상식 달의 丙은 정재, 子는 비견이고 태어난 날의 亥를 기준으로 도화다. 날의 亥는 이번에도 명식의 亥와 亥亥自刑을 이뤘다.
이튿날 수상 강연에서 테레사는 캘커타 '죽어 가는 이들의 집'이 길에서 데려온 사람이 3만 6000명을 넘고, 그 가운데 1만 8000명 넘게 아름다운 죽음을 맞았다고 말했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밥 한 접시를 주면 되지만, 버려지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의 가난은 훨씬 없애기 어렵다고도 했다. 같은 강연에서 그는 오늘날 평화를 가장 크게 파괴하는 것이 낙태라고 말했다.
庚申년(1980)에는 인도 최고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를 받았다. 壬戌년(1982) 베이루트 포위전 때는 잠깐의 휴전을 끌어내 전선의 병원에 갇혀 있던 아이 37명을 적십자 대원들과 함께 데리고 나왔다. 癸亥년(1983)에는 로마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나러 갔다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이름이 커진 만큼 비판도 따랐다. 캘커타 출신 의사 아루프 채터지는 그가 고통을 떠받드는 문화를 퍼뜨리고 캘커타의 모습을 일그러뜨렸다고 비판했다. 영국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癸未년(2003)에 쓴 글에서 "그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아니었다. 가난의 친구였다"고 적었다. 캐나다 연구자 세 사람은 논문에서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이 들어오는데도 그의 집들에는 의료와 체계적인 진단, 진통제가 모자랐다고 지적했다. 공인 전기를 쓴 나빈 차울라는 테레사가 처음부터 병원을 지으려 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병원이 받아 주지 않는 사람들이 위로받으며 존엄하게 죽을 곳을 마련하려 했다는 것이다.
대운은 丙子 대운(1986. 6.~1996. 6.)으로 바뀌었다. 丙은 정재, 子는 비견이다. 子는 명식의 申과 申子半合(水)을 이루고, 태어난 날의 亥를 기준으로 도화다. 癸는 子에서 건록(建祿), 제 힘으로 서는 자리에 든다. 己巳년(1989)에 두 번째 심장 발작을 겪은 뒤 그는 심장 박동기를 달았다. 辛未년(1991)에는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사랑의 선교회 수사들의 집을 열었다. 가족이 스코페를 떠나 옮겨 간 도시였지만, 공산 정권은 그가 어머니와 언니를 만나러 오는 것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정권 아래에서 세상을 떠났다. 테레사는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핏줄로는 알바니아 사람이고, 국적으로는 인도 사람입니다. 신앙으로는 가톨릭 수녀입니다. 소명으로는 온 세상에 속해 있고, 마음은 온전히 예수 성심께 속해 있습니다."
“사랑은 집에서 시작됩니다.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라, 하는 일에 사랑을 얼마나 담느냐입니다.”
테레사 수녀, 노벨 평화상 수상 강연壬子日 · 己未年08
어둠이라 부른 것
대운은 乙亥 대운(1996. 6.~2006. 6.)으로 넘어갔다. 乙은 식신, 亥는 겁재다. 乙은 명식의 庚과 乙庚合(金)을, 亥는 명식의 亥와 亥亥自刑을 이룬다. 癸는 亥에서 다시 제왕에 든다. 태어난 날의 지지와 같은 글자가 10년짜리 대운으로 들어온 셈이다.
丙子년(1996)
丙子년(1996) 봄, 테레사는 넘어져 쇄골이 부러졌고, 넉 달 뒤에는 말라리아와 심부전을 앓았다. 丁丑년 癸卯월 甲寅일(1997. 3. 13.), 사랑의 선교회의 고참 수녀들이 비공개 투표로 니르말라 수녀를 새 총원장으로 뽑았다. 그해 그는 마지막으로 외국에 나가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고, 캘커타로 돌아와 마지막 몇 주 동안 방문객을 맞고 수녀들을 가르쳤다.
丁丑년 戊申월 庚戌일(1997. 9. 5.), 테레사는 캘커타 사랑의 선교회 본원에서 여든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의 간지 庚戌은 그가 태어난 해의 간지와 똑같다. 달의 戊는 일간과 戊癸合(火)을 이뤘고, 달의 申은 태어난 달의 지지와 같은 글자로 태어난 해의 戌을 기준으로 역마다.
시신은 거의 예순아홉 해 전 그가 인도에 처음 와서 닿은 로레토 수녀원 옆, 성 토마스 성당에 한 주 동안 안치됐다. 丁丑년 己酉월 戊午일(1997. 9. 13.), 인도 정부가 국장(國葬)을 치렀다. 장례 미사가 열린 네타지 실내경기장에는 여러 나라의 대통령과 왕족 곁에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그는 본원 안에 묻혔다. 그날의 戊는 일간과 戊癸合(火)을, 午는 명식의 戌과 午戌半合(火)을 이뤄 명식에 없던 불을 만들었다.
세상이 몰랐던 일은 그가 떠난 뒤에 드러났다. 테레사는 66년 동안 고해 신부와 장상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편지를 없애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사람들이 예수보다 자기를 더 생각하게 될까 봐 걱정했다. 편지는 남았고, 丁亥년(2007)에 책 「Come Be My Light」로 묶여 나왔다. 빈민가에 들어가던 무렵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50년 동안, 그는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는 그것을 '어둠'이라 불렀다. "제 믿음은 어디 있습니까? 마음 깊은 곳에도 공허와 어둠밖에 없습니다." 한 편지에 적은 문장이다. 책이 나온 해의 간지 丁亥는 레트니체의 날과 기차 안의 날, 두 날의 간지와 같다.
壬午년(2002), 교황청은 인도 여성 모니카 베스라의 배 속 종양이 테레사의 사진이 든 메달을 댄 뒤 나았다는 일을 기적으로 인정했지만, 베스라의 남편과 담당 의사 일부는 약으로 나은 것이라고 말했다. 癸未년 壬戌월 乙丑일(2003. 10. 19.),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테레사를 복자로 선포했다.
丙申년 丙申월 己丑일(2016. 9. 4.), 교황 프란치스코가 같은 광장에서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온 노숙인 1500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해와 달의 간지가 모두 丙申이었다. 丙은 정재이고, 申은 태어난 달의 지지와 같은 정인으로 태어난 해의 戌을 기준으로 역마다. 교회는 그의 축일을 세상을 떠난 날로 정했다.
그날의 간지
庚戌년 甲申월 癸亥일(1910. 8. 26.)스코페에서 태어났다. 이튿날 세례를 받았다.태어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