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午년 戊戌월 壬辰일(1906. 10. 15.), 엑상프로방스 레로브 언덕. 예순일곱 살의 폴 세잔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두 시간을 더 그렸다. 집으로 가던 길에 쓰러진 그를 지나가던 세탁부의 수레가 실어 왔다.
2026. 10. 4.
나壬申편인 · 장생일주
상관乙丑정관 · 쇠월주
편관戊戌편관 · 관대년주
丑戌刑
목 1화 0토 3금 1수 1
01
한겨울의 큰물
戊戌년 乙丑월 壬申일(1839. 1. 19.), 엑상프로방스에서 모자 가게를 하던 마흔 살의 루이오귀스트 세잔이 관청에 나가 사내아이 하나를 제 아들로 인정했다. 아이는 그날 새벽 1시에 오페라 거리 28번지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폴이었다. 어머니 안엘리자베트 오베르는 모자 공방에서 일하던 스물네 살의 여공이었다. 명식은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 여섯 글자로 세우고, 시각을 알면 두 글자를 더한다. 출생 신고에 적힌 새벽 1시는 子시와 丑시가 갈리는 경계라서, 이 기사는 여섯 글자로 읽는다.
사주의 주인공 격인 일간(日干, 태어난 날의 천간)은 壬이다. 같은 물이라도 빗물이나 이슬에 가까운 癸와 달리, 壬은 강과 바다처럼 큰물이다. 한곳에 고이기보다 흘러가며 제 길을 내는 물이다. 태어난 날의 지지는 申, 초가을의 쇠다. 申은 쇠이고, 壬에게는 편인(偏印)이다. 쇠가 물을 낳듯, 명리는 일간을 낳는 기운을 인성(印星)이라 부르고 어머니와 배움의 자리로 읽는다. 일간이 지지마다 쓰는 힘을 열두 단계로 나눈 12운성(十二運星)으로 보면 壬은 申에서 장생(長生), 새로 태어나는 자리에 든다.
태어난 달의 간지는 乙丑이다. 소한이 들고 보름 가까이 지난 날이었다. 丑은 얼어붙은 한겨울의 흙이고, 壬에게는 정관(正官)이다. 흙이 둑이 되어 물길을 막듯, 명리는 일간을 누르는 기운을 관성(官星)이라 부르고 규율과 윗사람, 몸담는 조직의 자리로 읽는다. 壬은 丑에서 쇠(衰), 한창때를 지나 힘을 고르는 자리에 든다. 달의 천간 乙은 풀과 덩굴 같은 나무, 壬이 제 안에서 꺼내 드러내는 상관(傷官)이다. 상관은 윗사람을 치는 기운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생각을 말과 표현으로 내보내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태어난 해의 간지는 戊戌이다. 입춘 전에 태어나 해의 간지는 아직 지난해의 것이다. 戊는 산처럼 두꺼운 흙이고 戌은 늦가을의 마른 흙이다. 戊戌은 두 글자 모두 편관(偏官)이다. 壬은 戌에서 관대(冠帶), 갓을 쓰고 세상에 나서는 자리에 든다.
여섯 글자 사이에는 형이 하나 선다. 해의 戌과 달의 丑이 丑戌刑을 이룬다. 형(刑)은 '형벌'로만 풀려 겁을 주는데, 명리에서는 서로 깎고 다듬는 관계로 먼저 읽는다. 합도 충도 서지 않는다. 신살도 하나뿐이다. 태어난 해의 戌을 기준으로 申은 역마(驛馬), 자리를 옮기는 신살이다. 그 申이 태어난 날의 지지에 앉았다.
02
은행가의 아들
戊申년 丁巳월 癸酉일(1848. 6. 1.), 아버지는 엑상프로방스 코르들리에 거리 24번지에 은행을 열었다. 막 망한 은행의 출납원이던 조제프 카바솔을 동업자로 들였고, 자본금 10만 프랑은 혼자 댔다. 모자 장수가 은행가가 된 것이다. 이 은행이 훗날 아들이 돈 걱정 없이 그림만 그리게 해 준 밑천이 됐다.
庚戌년(1850) · 세잔의 아버지 루이오귀스트 세잔
그 무렵 흐르던 대운(大運)은 丙寅 대운(1844. 7.~1854. 7.)이다. 대운은 10년마다 바뀌는 운의 흐름으로, 양(陽)의 해에 태어난 남자는 태어난 달의 간지에서 한 칸씩 앞으로 간다. 세잔의 첫 대운 丙寅은 다섯 살에 시작됐다. 丙은 한낮의 해 같은 불이고, 壬에게는 편재(偏財)다. 물이 불을 꺼서 다스리듯, 명리는 일간이 다스리는 기운을 재성(財星)이라 부른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편재를 아버지의 자리로도 읽었다. 명식에 없던 불이 첫 대운의 천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寅은 나무이고, 壬에게는 식신(食神)이다. 寅은 명식의 申과 정면으로 부딪혀 寅申沖과 寅申刑을 이룬다. 충(沖)은 흔히 깨지는 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자리가 움직이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壬子년(1852) 가을, 열세 살의 세잔은 부르봉 중학교에 기숙생으로 들어갔다. 한 해 늦게 태어난 에밀 졸라, 바티스탱 바유와 금세 붙어 다녔고, 셋은 '떨어질 수 없는 아이들'로 불렸다. 셋은 아르크강에서 헤엄치고 낚시를 했고,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으며 시를 지었다.
그해의 간지 壬子에서 壬은 일간과 같은 글자, 비견(比肩)이다. 명리는 비견을 어깨를 나란히 한 또 하나의 나로 읽는다. 子는 한겨울의 물이고, 壬에게는 겁재(劫財)다. 壬은 子에서 제왕(帝旺), 가장 힘이 센 자리에 든다. 子는 명식의 申과 申子半合(水)을, 丑과 子丑合(土)을 이뤘다.
여섯 글자를 오행으로 세면 흙이 셋(戊·戌·丑)이고, 나무와 쇠가 하나씩(乙·申), 물이 하나(壬)다. 불은 한 글자도 없다. 壬에게 흙은 관성이고 불은 재성이다. 명식의 흙 셋이 모두 일간을 누르는 쪽에 섰고, 일간이 다스릴 불의 자리는 비어 있다.
강약도 저울에 올려 본다. 명리가 강약을 가를 때 가장 먼저 보는 태어난 달이 한겨울 흙의 달이고, 해의 두 글자도 흙이다. 일간 곁에서 힘을 보태는 글자는 날의 申 하나뿐이다. 壬일에 올 수 있는 시주 열두 가지를 모두 넣어 보면 모두 신약(身弱)으로 나온다. 출생 신고의 새벽 1시를 丑시로 보든 子시로 보든 판정은 같다. 신약은 흔히 몸이 약하다는 뜻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일간이 명식 안에서 받는 힘보다 누르고 빼 가는 힘이 크다는 말이다. 이 기사는 비어 있던 불이 해와 달과 날의 간지로 들어온 때를 따라간다.
대운은 丁卯 대운(1854. 7.~1864. 7.)으로 넘어갔다. 丁은 불이고, 壬에게는 정재(正財)다. 丁은 일간과 丁壬合(木)을 이룬다. 卯는 상관이고, 명식의 戌과 卯戌合(火)을 이뤄 불을 만든다.
戊午년 甲寅월(1858. 2.), 졸라가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떠났다. 세잔은 시와 노래를 섞은 편지를 파리로 부치기 시작했다. 戊午년 癸亥월 己酉일(1858. 11. 12.), 여름에 한 번 떨어졌던 문과 바칼로레아에 붙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은행을 물려받기를 바랐고, 세잔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법 공부보다 시와 그림에 마음을 뺏겼고, 저녁에는 미술관 건물에 있던 시립 무료 데생 학교에서 화가 조제프 지베르에게 그림을 배웠다.
己未년 壬申월 乙未일(1859. 8. 25.), 데생 학교는 실물 모델을 보고 그린 그의 유화 두상에 2등상을 줬다. 3주 뒤인 己未년 癸酉월 丙辰일(1859. 9. 15.), 아버지는 도시 서쪽의 18세기 저택 자 드 부팡과 15헥타르 가까운 땅을 8만 5천 프랑에 샀다. 세잔은 그 집 큰 응접실 벽에 봄·여름·가을·겨울 네 폭을 그리고, 좋아하지도 않던 앵그르의 이름으로 서명했다.
그해의 간지 己未는 두 글자 모두 정관이다. 未는 명식의 丑과 정면으로 부딪혀 丑未沖을 이루고, 丑未刑과 未戌刑도 함께 이룬다. 저택을 산 날의 천간 丙은 편재, 아버지의 자리로 읽는 글자다. 날의 辰은 명식의 戌과 辰戌沖을 이뤘다.
03
아카데미 쉬스
辛酉년 壬辰월(1861. 4.), 스물두 살의 세잔이 파리에 올라왔다. 아버지는 오래 반대하다가 끝내 손을 들었다. 먼저 파리에 가 있던 졸라가 어서 오라고 조른 끝이었다. 그는 시테섬 오르페브르 강변의 아카데미 쉬스에 다니며 실물 모델을 그렸고, 거기서 카미유 피사로를 만났다.
丁卯년(1867) · 세잔의 그림 「흑인 스키피오」(1867)
파리는 그에게 끝내 낯설었다. 졸라는 그해 여름 바유에게 이렇게 적었다. "폴은 학교에서 알던 그 훌륭하고 별난 친구 그대로다. 여기 오자마자 돌아가겠다는 말부터 꺼냈다." 에콜 데 보자르 입학시험에도 떨어졌다. 辛酉년 丁酉월(1861. 9.), 그는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가 아버지의 은행에 앉았다.
은행 일은 오래가지 않았다. 壬戌년(1862) 늦가을, 그는 다시 파리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다달이 150프랑 남짓을 보내 주었다. 보자르는 이번에도 그를 받지 않았다. 살롱은 甲子년(1864)부터 己巳년(1869)까지 해마다 그의 그림을 떨어뜨렸다. 庚午년 己卯월 乙卯일(1870. 3. 20.), 출품 마감 날에도 그는 고향 친구 아쉴 앙프레르의 초상과 누운 나부 그림을 들고 살롱에 갔다. 두 점 모두 떨어졌다.
그 시기의 대운은 戊辰 대운(1864. 7.~1874. 7.)이다. 戊와 辰은 모두 편관이다. 辰은 명식의 戌과 정면으로 부딪혀 辰戌沖을 이룬다. 壬은 辰에서 묘(墓), 기운을 거두어 묻어 두는 자리에 든다. 태어난 날의 申을 기준으로 辰은 화개(華蓋)다. 화개는 흔히 고독으로만 풀리지만, 명리는 학문과 예술에 파고드는 기운으로도 읽는다. 명식에 이미 셋인 흙 위로 편관 두 글자가 10년 동안 더해졌다. 관성을 몸담는 조직과 윗사람의 자리로 읽는다면, 해마다 그림을 돌려보낸 살롱 심사위원단만 한 윗사람이 또 있었을까.
04
레스타크
己巳년(1869), 그는 아카데미 쉬스에서 열한 살 아래의 오르탕스 피케를 만났다. 제본 공방에서 일하며 틈틈이 모델을 서던 사람이다. 庚午년 辛巳월 丁卯일(1870. 5. 31.), 졸라가 파리 17구 구청에서 알렉상드린 멜레와 결혼할 때 세잔은 신랑의 증인으로 섰다.
甲戌년(1874) · 오베르쉬르우아즈의 피사로와 세잔, 동료들
그해 여름 프로이센과 전쟁이 터졌다. 세잔은 징집을 피해 오르탕스와 함께 마르세유 곁의 어촌 레스타크로 내려갔다. 庚午년 己丑월(1871. 1.), 그는 징집 거부자로 고발됐다. 헌병이 잡으러 왔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辛未년 庚子월 庚戌일(1872. 1. 4.), 파리 쥐시외 거리 45번지에서 아들 폴이 태어났다. 세잔은 아이를 제 아들로 신고했다. 어머니에게는 소식을 전했지만 아버지에게는 숨겼다. 오르탕스의 존재가 알려지면 아버지가 다달이 보내 주는 돈이 끊길까 두려웠다.
입춘 전이라 해의 간지는 아직 辛未다. 해의 未는 정관, 날의 戌은 편관이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관성을 자식의 자리로 읽었다. 날의 庚은 쇠이고, 壬에게는 편인이다. 庚은 명식의 乙과 乙庚合(金)을 이뤘고, 戌은 명식의 丑과 丑戌刑을 이뤘다.
壬申년(1872) 여름, 그는 피사로가 사는 퐁투아즈로 갔다. 그해의 간지 壬申은 그가 태어난 날의 간지와 똑같다. 피사로는 어두운 색을 버리고 빨강과 노랑과 파랑, 그리고 그 가까운 색으로만 칠하라고 권했다. 세잔의 화폭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가까운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는 훗날 반 고흐를 돌본 의사 폴 가셰가 작업실을 내주었다. 세잔은 오래도록 자기를 피사로의 제자라고 불렀다. "피사로 영감은 내게 아버지 같았다. 조언을 구할 사람, 하느님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돌아봤다.
05
목맨 사람의 집
甲戌년 戊辰월 壬寅일(1874. 4. 15.), 파리 카퓌신 대로 35번지에서 살롱 밖의 화가들이 제 손으로 꾸린 전시가 문을 열었다. 사진가 나다르가 쓰던 작업실이었고, 서른 명이 그림을 걸었다. 몇몇 회원은 세잔의 거친 그림이 전시를 망칠까 걱정했지만 피사로가 밀어붙여 자리를 얻었다. 그는 「목맨 사람의 집」과 「현대판 올랭피아」, 오베르의 풍경 습작까지 세 점을 냈다.
乙亥년(1875) · 세잔의 그림 「분홍 배경의 자화상」(1875 무렵)
비평가들의 분노와 조롱은 유독 그의 그림에 쏠렸다. 마네는 세잔을 두고 흙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미장이라고 했다. 「목맨 사람의 집」은 그 전시에서 팔린 몇 안 되는 그림이었다. 도리아 백작이 300프랑에 샀다.
전시가 열린 날의 간지 壬寅에서 壬은 일간과 같은 비견이다. 寅은 나무이고, 壬에게는 식신이다. 식신은 이름 때문에 흔히 먹을 복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재주가 결과물로 나오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寅은 명식의 申과 정면으로 부딪혀 寅申沖과 寅申刑을 이뤘다. 태어난 날의 申을 기준으로 寅은 역마다.
석 달 뒤 대운은 己巳 대운(1874. 7.~1884. 7.)으로 넘어갔다. 己는 정관, 巳는 편재다. 巳는 명식의 申과 巳申合(水)과 巳申刑을 함께 이룬다. 壬은 巳에서 절(絶)에 든다. 절은 이름 때문에 끊어져 끝나는 자리로 오해받지만, 명리는 앞의 기운이 끊기고 새 기운을 받을 준비를 하는 자리로 읽는다.
乙亥년(1875) 그는 세관 공무원 빅토르 쇼케를 만났다. 쇼케는 그의 그림 세 점을 사 간 뒤로 가장 충실한 수집가가 됐다. 丁丑년(1877) 세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세잔은 열여섯 점을 걸었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쇼케의 초상을 두고, 헌 장화 빛깔의 이 기묘한 머리를 임신부가 보면 배 속의 아이가 황열병에 걸릴 것이라고 적었다. 세잔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한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戊寅년 乙卯월(1878. 3.), 아들에게 온 편지를 읽은 아버지가 오르탕스와 손자의 존재를 알아 버렸다. 쇼케가 무심코 쓴 편지였다. 아버지는 다달이 보내던 돈을 절반으로 줄였고, 세잔은 졸라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壬午년 甲辰월 庚子일(1882. 5. 1.)에 문을 연 살롱에 마침내 그의 그림이 걸렸다. 친구 앙투안 기유메가 심사위원이 되자, 제자 한 명의 그림을 심사 없이 걸 수 있는 권리를 그에게 썼다. 카탈로그에는 '기유메의 제자' 세잔의 「L. A. 씨의 초상」이라고 적혔다. 그림은 외진 방 맨 윗줄의 어두운 자리에 걸려 아무 눈길도 받지 못했다. 그가 살롱에 그림을 건 것은 이때 한 번뿐이다.
丙戌년 辛卯월 甲午일(1886. 4. 4.), 엑상프로방스 근처의 언덕 마을 가르단에서 세잔이 졸라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나흘 전에 책으로 나온 졸라의 소설 『작품』을 받은 참이었다. 주인공 클로드 랑티에는 끝내 걸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화가다. 소설 곳곳에 세잔과 졸라가 함께 보낸 시절이 들어 있었다. "방금 자네가 보내 준 『작품』을 받았네. 『루공마카르』의 작가에게 이 다정한 기억의 증표를 고마워하며,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악수를 청하네." 그가 적은 글은 이것이 거의 전부였다.
丙戌년(1886) · 세잔의 그림 「세잔 부인」(1886~1887)
이 편지는 오랫동안 세잔이 졸라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로 알려졌고, 두 사람이 소설 때문에 갈라섰다는 이야기가 함께 퍼졌다. 그 뒤 丁亥년 辛亥월 丁酉일(1887. 11. 28.) 자로 쓴 편지가 새로 나왔다. 문학 연구자 앙리 미테랑은 丙申년(2016)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펴내며, 세잔이 『작품』을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봤다.
丙戌년 壬辰월 戊午일(1886. 4. 28.), 세잔은 엑상프로방스 시청에서 오르탕스와 결혼했다. 부모가 그 자리를 지켰다. 두 사람의 사이는 이미 식은 지 오래였다. 열네 살이 된 아들을 법으로 제 자식으로 세우려는 혼인이었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정재를 아내의 자리로 읽었다. 혼인한 날의 지지 午가 정재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불이 날의 지지로 들었고, 午는 명식의 戌과 午戌半合(火)을 이뤘다. 달의 辰은 명식의 戌과 辰戌沖을 이뤘다.
그 무렵 흐르던 대운은 庚午 대운(1884. 7.~1894. 7.)이다. 庚은 편인, 午는 정재다. 庚은 명식의 乙과 乙庚合(金)을, 午는 명식의 戌과 午戌半合(火)을 이룬다. 壬은 午에서 태(胎), 새 기운이 잉태되는 자리에 든다.
丙戌년 戊戌월 丙辰일(1886. 10. 23.), 아버지 루이오귀스트가 자 드 부팡에서 여든여덟 살로 세상을 떠났다. 세잔은 어머니, 누이들과 함께 그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었다. 내게 해마다 2만 5천 프랑의 수입을 남겨 주셨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해와 날의 천간이 모두 丙, 편재였다. 날의 간지 丙辰은 아버지가 자 드 부팡을 산 날의 간지와 같다. 달의 간지 戊戌은 세잔이 태어난 해의 간지와 똑같고, 戌은 명식의 丑과 丑戌刑을 이뤘다. 날의 辰은 명식의 戌과 辰戌沖을 이뤘다.
07
볼라르의 가게
庚寅년(1890), 세잔은 당뇨를 앓기 시작했다. 그 무렵 그는 자 드 부팡 근처 밭에서 일하던 농부와 일꾼들을 탁자 앞에 앉혀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지금 남은 것은 다섯 점이다.
庚寅년(1890) · 세잔의 그림 「팔레트를 든 자화상」(1890 무렵)
대운은 辛未 대운(1894. 7.~1904. 7.)으로 넘어갔다. 辛은 정인, 未는 정관이다.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과 丑未刑을, 戌과 未戌刑을 이룬다. 壬은 未에서 양(養), 기운을 기르는 자리에 든다.
乙未년 丁亥월(1895. 11.), 젊은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가 파리 라피트 거리 39번지의 비좁은 화랑에서 세잔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쉰여섯 살이었다. 세잔이 꾸러미로 보낸 150점 남짓 가운데 50점 안팎이 벽에 걸렸다. 모네와 드가, 르누아르가 그림을 샀다. 비평가 귀스타브 제프루아는 「르 주르날」에 이렇게 썼다. "그는 진실에 사로잡힌 위대한 사람이다. 불같고 순진하며, 거칠고 섬세하다. 그는 루브르에 갈 것이다."
달의 丁은 정재이고 일간과 丁壬合(木)을 이뤘다. 달의 亥는 壬과 같은 물이고, 壬에게는 비견이다. 壬은 亥에서 건록(建祿), 제 힘으로 서는 자리에 든다.
丁酉년 庚戌월 丙辰일(1897. 10. 25.), 어머니 안엘리자베트가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났다. 날의 간지 丙辰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날과 같다. 60일에 한 번 돌아오는 간지가 자 드 부팡을 산 날과 아버지를 보낸 날에 이어 어머니를 보낸 날에도 겹쳤다. 달의 천간 庚은 편인, 어머니의 자리로 읽는 인성이다. 庚은 명식의 乙과 乙庚合(金)을 이뤘다.
己亥년(1899), 누이의 뜻에 따라 가족은 자 드 부팡을 팔았다. 세잔은 시내 불레공 거리 23번지의 작은 아파트로 옮겼고, 가정부 브레몽 부인을 들였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그를 돌봤다.
“자연을 원통과 구와 원뿔로 다루고, 모든 것을 원근 속에 놓으십시오.”
폴 세잔,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己卯日 · 甲辰年08
레로브 언덕
辛丑년 己亥월(1901. 11.), 그는 도시 북쪽 레로브 언덕에 땅을 샀다. 생트빅투아르산이 건너다보이는 비탈이었다. 그는 위층에 큰 창을 낸 작업실을 짓게 했고, 큰 화폭을 드나들게 하려고 벽에 좁고 긴 틈까지 냈다. 작업실은 壬寅년 己酉월(1902. 9.)에 다 지어졌다.
甲辰년(1904) · 레로브 작업실의 세잔(1904)
壬寅년 己酉월 乙卯일(1902. 9. 29.), 졸라가 파리의 집에서 침실 벽난로의 가스에 중독돼 숨졌다. 세잔은 그 소식에 크게 상심했다.
癸卯년 乙丑월 戊辰일(1904. 2. 4.), 이집트에서 돌아오던 젊은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엑상프로방스로 그를 찾아왔다. 입춘 하루 전이라 해의 간지는 아직 癸卯였고, 달의 간지 乙丑은 세잔이 태어난 달의 간지와 똑같다. 베르나르는 한 달을 머물며 그를 따라 생트빅투아르산과 샤토 누아르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甲辰년 戊辰월 己卯일(1904. 4. 15.), 세잔은 파리로 돌아간 베르나르에게 편지를 썼다. "자연을 원통과 구와 원뿔로 다루고, 모든 것을 원근 속에 놓으십시오." 베르나르는 세잔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그와의 기억과 편지를 잡지에 실었고, 이 문장은 그 뒤 수없이 인용됐다.
편지를 쓴 날 해와 달의 辰은 편관이고, 두 辰은 명식의 戌과 각각 辰戌沖을 이뤘다. 날의 己도 정관이다.
그해 여름 대운은 壬申 대운(1904. 7.~1914. 7.)으로 넘어갔다. 그가 태어난 날의 간지와 똑같은 간지다. 壬은 비견, 申은 편인이고, 壬은 申에서 다시 장생에 든다. 태어난 해의 戌을 기준으로 申은 역마다. 甲辰년 甲戌월 壬午일(1904. 10. 15.)에 문을 연 살롱 도톤은 방 하나를 통째로 그의 그림에 내주었다.
언덕 위의 한 자리에서 그는 생트빅투아르산을 열한 번 유화로, 열일곱 번 수채화로 그렸다. 丙午년 丙申월 乙卯일(1906. 9. 8.), 그는 파리에 있는 아들에게 이렇게 적었다. "화가로서 나는 자연 앞에서 점점 더 밝게 보게 된다. 그런데 내 느낌을 실현하는 일은 늘 몹시 어렵다."
丙午년 戊戌월 壬辰일(1906. 10. 15.), 레로브 작업실에서 수백 미터 위의 언덕에서 풍경을 그리던 그를 소나기가 덮쳤다. 그는 두 시간을 버티다 집으로 향했고, 길에서 정신을 잃었다. 지나가던 세탁부의 수레가 그를 불레공 거리의 집으로 실어 왔다. 이튿날 새벽 그는 정원으로 나가 정원사 발리에의 초상을 붙잡았다가 다시 쓰러졌고, 그 뒤로 침대를 떠나지 못했다. 丙午년 戊戌월 甲午일(1906. 10. 17.)에는 물감 상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주문한 지 여드레가 지났는데 아직 답이 없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비를 맞은 날의 해는 丙午였다. 丙은 편재, 午는 정재다. 명식에 없던 불이 해의 천간과 지지를 모두 채운 해였다. 날의 간지 壬辰에서 壬은 비견이고, 辰은 명식의 戌과 辰戌沖을 이뤘다.
丙午년 戊戌월 己亥일(1906. 10. 22.)이 그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날로 널리 전한다. 예순일곱 살이었다. 전보를 받은 아내와 아들은 제때 닿지 못했다. 엑상프로방스 시청에 남은 사망 신고서에는 丙午년 戊戌월 庚子일(1906. 10. 23.) 아침 7시에 불레공 거리 23번지 집에서 숨졌다고 적혀 있다. 庚子는 그의 그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롱에 걸린 날의 간지다. 날의 亥는 壬과 같은 물이고, 壬은 亥에서 건록에 든다. 子는 壬이 제왕에 드는 글자다. 장례는 생소뵈르 대성당에서 치렀고, 그는 생피에르 묘지에 묻혔다.
丁未년(1907) 가을 살롱 도톤은 두 방에 그의 그림을 걸어 회고전을 열었다. 피카소는 훗날 세잔을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辛卯년(2011),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다섯 점 가운데 한 점이 카타르 왕실에 팔렸다. 값은 2억 5천만 달러에서 3억 2천만 달러 사이로 추정됐고, 그때까지 팔린 그림 가운데 가장 비쌌다.
그날의 간지
戊戌년 乙丑월 壬申일(1839. 1. 19.)엑상프로방스 오페라 거리 28번지에서 태어났다.태어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