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재필
辛未癸亥生 · 조선·미국 34°57′N 127°12′E · 언론

서재필

丙申년 壬辰월 庚寅일(1896. 4. 7.), 한성 정동. 네 쪽짜리 신문이 한 장에 동전 한 푼으로 나왔다. 세 쪽은 띄어 쓴 한글이었고 마지막 한 쪽은 영어였다. 미국 시민 필립 제이슨, 서른두 살의 서재필이 펴낸 『독립신문』 창간호다.

2026. 10. 4.

나辛未편인 · 쇠일주
편재乙丑편인 · 양월주
식신癸亥상관 · 목욕년주
목 1화 0토 2금 1수 2
01

소한 이튿날의 보석

철종 14년 음력 11월 28일, 전라도 동복 문덕(지금의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가내마을의 외가에서 대구 서씨 서광효의 아들이 태어났다. 조선은 이때 음력을 썼다. 이 날짜를 양력으로 옮기면 癸亥년 乙丑월 辛未일(1864. 1. 7.)이고, 음력 달력의 일진도 같은 辛未일이다. 그해 진사에 급제한 아버지는 기쁜 일이 겹쳤다며 아이에게 쌍경(雙慶)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뒤에 재필(載弼)로 바꿨다고 전한다. 몇 시에 태어났는지는 기록에 없다. 명식은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 여섯 글자로 세우고, 시각을 알면 두 글자를 더한다. 이 기사는 여섯 글자로 읽는다.

사주의 주인공 격인 일간(日干, 태어난 날의 천간)은 辛이다. 같은 쇠라도 무쇠 덩어리 庚과 달리, 辛은 불에 녹여 다듬은 보석이나 벼린 칼날에 가깝다. 크게 휘두르기보다 날카롭게 베고 또렷하게 빛나는 쇠다. 태어난 날의 지지는 未, 한여름 끝의 마른 흙이다. 흙은 쇠를 품어 기르니 辛에게 未는 편인(偏印)이 된다. 일간이 지지마다 쓰는 힘을 열두 단계로 나눈 12운성(十二運星)으로 보면 辛은 未에서 쇠(衰), 한창때를 지나 힘을 고르는 자리에 든다.

태어난 달의 간지는 乙丑이다. 소한이 들고 이튿날이었다. 丑은 겨울 끝의 언 흙이고 辛에게는 다시 편인이다. 명리가 강약을 가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이 태어난 달인데, 이렇게 태어난 달이 일간 편에 선 경우를 득령(得令)이라 한다. 辛은 丑에서 양(養), 어미 품에서 길러지는 자리에 든다. 달의 천간 乙은 풀과 덩굴 같은 나무로, 쇠가 베고 다스리는 편재(偏財)다.

태어난 해의 간지는 癸亥다. 달력은 해를 넘겼지만 입춘 전이라 해의 간지는 아직 癸亥이고, 음력으로도 癸亥년 동짓달이다. 癸는 빗물 같은 물로 辛에게 식신(食神)이고, 亥는 겨울 문턱의 큰 물로 상관(傷官)이다. 쇠가 제 안에서 물을 내놓는다고 보아, 명리는 이 둘을 일간이 밖으로 드러내는 말과 재주로 읽는다. 辛은 亥에서 목욕(沐浴), 갓 태어나 몸을 씻는 자리에 든다. 띠로 치면 돼지띠다.

여섯 글자 사이에는 충과 형이 하나씩 선다. 태어난 달의 丑과 날의 未가 정면으로 부딪혀 丑未沖을 이루고, 같은 두 글자가 丑未刑도 이룬다. 충(沖)은 흔히 깨지는 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자리가 움직이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형(刑)은 '형벌'로만 풀려 겁을 주는데, 명리에서는 서로 깎고 다듬는 관계로 먼저 읽는다. 신살도 하나 선다. 태어난 해의 亥를 기준으로 날의 未는 화개(華蓋)다. 화개는 흔히 외로움의 별로만 알려졌지만, 명리에서는 글과 학문처럼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드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여섯 글자를 오행으로 세면 물이 둘(癸·亥), 흙이 둘(丑·未), 나무가 하나(乙), 쇠가 하나(辛)다. 불은 한 글자도 없다. 辛에게 불은 관성(官星), 쇠를 녹이고 다듬는 기운이다. 명리는 이 자리를 규율과 이름, 몸담는 나라와 관청으로 읽는다.

강약도 저울에 올려 본다. 태어난 달과 날의 지지가 모두 쇠를 기르는 흙이고, 해의 물과 달의 나무가 일간의 힘을 덜어 간다. 辛일에 올 수 있는 시주 열두 가지를 모두 넣어 보면 여섯은 신강(身强), 여섯은 중화(中和)로 나온다. 신약(身弱)으로 기우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이 기사는 명식에 비어 있는 불이 대운과 해와 날의 간지로 들어온 때를 따라간다.

02

외삼촌의 사랑방

대운(大運)은 10년마다 바뀌는 운의 흐름으로, 음(陰)의 해에 태어난 남자는 태어난 달의 간지에서 한 칸씩 거꾸로 간다. 서재필은 절기 바로 뒤에 태어나 첫 대운이 거의 곧바로 시작됐다. 甲子 대운(1864. 3.~1874. 3.)이다. 甲은 곧게 선 큰 나무로 辛에게 정재(正財)이고, 子는 한겨울의 물로 식신이다. 子는 명식의 丑과 子丑合(土)을 이룬다. 합(合)은 두 글자가 끌어당겨 새 기운을 만드는 관계다. 해와 날 어느 쪽을 기준으로 봐도 子는 도화(桃花)다. 도화는 흔히 바람기로만 풀리지만, 명리에서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일곱 살 무렵 그는 생가를 떠났다. 아들이 없던 7촌 아저씨 서광하의 양자로 들어간 것이다. 양어머니는 안동 김씨 세도가의 딸이었고, 서울에서 벼슬하던 양어머니의 동생 김성근이 어린 서재필을 집에 들여 글을 가르쳤다. 『동몽선습』에서 『사기』와 사서육경까지 대부분을 외웠다고 한다. 김성근의 집에는 김옥균과 서광범이 드나들었다.

열 살 무렵 대운은 癸亥 대운(1874. 3.~1884. 3.)으로 넘어갔다. 태어난 해와 똑같은 간지다. 癸는 식신, 亥는 상관이다. 대운의 亥는 명식의 亥와 겹쳐 亥亥自刑을 이룬다. 같은 글자가 겹칠 때 서는 형을 자형(自刑)이라 한다.

열여덟 살이던 壬午년(1882) 봄, 서재필은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첫 벼슬은 경서를 찍고 관인을 맡아 보는 교서관의 부정자(副正字)였다. 그 무렵 그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과 어울리며 바깥 세상을 다룬 책을 몰래 돌려 읽었다. 무리 가운데 가장 어렸고, 김옥균은 그를 동생이라고 불렀다.

癸未년(1883), 군대를 새로 길러야 한다는 김옥균의 권유로 서재필은 동료 열네 명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게이오의숙에서 일본어를 익히고, 도쿄의 도야마 육군학교에서 총검술과 제식 훈련 같은 신식 군사 교육을 받았다. 이듬해 여름 돌아온 그는 사관학교를 세우자고 건의했고, 고종의 허락으로 조련국(操鍊局)이 서자 사관장이 됐다.

03

우정국의 불

스무 살이 된 해 봄, 대운이 壬戌 대운(1884. 3.~1894. 3.)으로 바뀌었다. 壬은 큰 강물 같은 물로 辛에게 상관이다. 상관은 흔히 윗사람을 치는 흉한 기운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틀을 깨고 제 말을 밖으로 드러내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戌은 가을 끝의 흙으로 정인(正印)이다. 戌은 명식의 丑과 丑戌刑을, 未와 未戌刑을 이룬다. 辛은 戌에서 관대(冠帶), 갓을 쓰고 세상에 나서는 자리에 든다.

甲申년 乙亥월 戊子일(1884. 12. 4.) 저녁, 한성의 새 우정총국 청사에서 낙성 잔치가 열렸다. 우정총국 총판 홍영식이 나라 안팎의 귀빈을 불렀다.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이웃 건물에서 불길이 솟았고, 밖으로 뛰쳐나간 민영익이 칼을 맞고 피투성이로 돌아왔다. 음력 10월 17일 밤의 일이다. 서재필은 일본에서 함께 훈련받은 사관생도들을 이끌고 고종을 경우궁으로 옮겨 지켰고, 문을 막아선 채 수구파 대신들을 처단하는 일을 맡았다. 이튿날 정변 세력이 내놓은 새 내각에서 그는 병조참판 겸 후영영관(後營領官)에 이름을 올렸다.

정변 날의 간지 戊子에서 戊는 산처럼 두꺼운 흙, 辛에게 정인이다. 戊는 명식의 癸와 戊癸合(火)을 이뤘다. 명식에 없던 불을 합으로 만들어 내는 짝이다. 子는 식신이고, 명식의 丑과 子丑合(土)을 이뤘다. 해와 날 어느 쪽을 기준으로 봐도 子는 도화다. 달의 乙亥에서 亥는 명식의 亥와 亥亥自刑을 이뤘다.

甲申년 乙亥월 庚寅일(1884. 12. 6.), 청나라 군대가 창덕궁으로 밀고 들어왔다. 정변은 사흘 만에 무너졌다. 서재필은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제물포에서 일본 배에 숨어 나가사키로 건너갔다. 날의 간지 庚寅에서 庚은 무쇠 같은 쇠로 겁재(劫財)이고, 寅은 봄을 여는 큰 나무로 정재다. 庚은 명식의 乙과 乙庚合(金)을 이뤘고, 寅은 명식의 亥와 寅亥合(木)을 이뤘다.

조선에 남은 가족은 역적의 집안이 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부모와 형과 아내가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고, 동생 서재창은 참형을 당했으며, 두 살 난 아들은 굶어 죽었다고 적었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조금씩 엇갈린다. 다른 기록은 아들이 세 살이었고 乙酉년(1885)에 숨졌다고 적는다.

04

필재서를 뒤집은 이름

외교 문제를 꺼린 일본 정부는 망명객들을 냉대했다. 乙酉년(1885), 서재필은 박영효, 서광범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닿았다. 처음 얻은 일은 가구점 광고지를 붙이는 일이었다. 낮에는 막일을 하고 밤에는 기독교청년회(YMCA) 야간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교회 신자의 소개로 만난 펜실베이니아의 탄광 부호 존 홀렌벡이 그에게 학비를 대겠다고 나섰다.

丙戌년(1886) 가을, 서재필은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리의 해리힐맨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라틴어와 그리스어, 수학을 익혔고, 졸업식에서는 졸업생 대표로 고별 연설을 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미국 이름을 썼다. 서재필을 거꾸로 읽은 '필재서'에서 필은 필립(Philip)이 되고 재서는 제이슨(Jaisohn)이 됐다.

홀렌벡은 대학을 마치고 선교사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요구했다. 역적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던 그는 후원을 잃었다. 라파예트 대학을 그만두고 워싱턴으로 간 서재필은 낮에는 육군 의학도서관에서 중국과 일본의 의학 서적을 영어로 옮겼고, 밤에는 컬럼비안 대학(지금의 조지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야간부에서 공부했다. 그사이 그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의과대학을 2등으로 마친 그는 모교에 강사로 남았지만, 유색인에게 배울 수 없다는 학생들의 반발에 1년 만에 물러났다.

서른 살이 된 해 봄, 대운이 辛酉 대운(1894. 3.~1904. 3.)으로 넘어갔다. 辛酉는 두 글자 모두 일간과 같은 쇠, 비견(比肩)이다. 명리는 비견을 어깨를 나란히 한 또 하나의 나로 읽는다. 辛은 酉에서 건록(建祿), 제 힘으로 서는 자리에 든다. 酉는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이룬다.

甲午년 庚午월 癸巳일(1894. 6. 20.), 서재필은 워싱턴에서 뮤리엘 암스트롱과 결혼했다. 남북전쟁 때 철도우편 제도를 세운 조지 뷰캐넌 암스트롱의 딸이었다. 그는 워싱턴에서 병원을 열었지만 동양인 의사를 찾는 환자는 드물었다. 그해의 천간 甲은 정재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정재를 아내의 자리로 읽었다. 해와 달의 지지는 모두 午, 한여름의 불로 편관(偏官)이다. 두 午는 명식의 未와 각각 午未合(火)을 이뤘다. 날의 巳는 초여름의 불로 정관(正官)이고, 명식의 亥와 巳亥沖을 이뤘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불이 그날 지지 셋으로 들어왔다. 해와 날 어느 쪽을 기준으로 봐도 巳는 역마(驛馬), 자리를 옮기는 신살이다.

05

한 장에 한 푼

같은 해 조선에서는 갑오개혁이 벌어졌고, 갑신정변 주역들에게 씌운 역적의 이름이 벗겨졌다. 乙未년(1895) 조선 정부는 미국에 있던 서재필을 외부협판에 앉히고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해 가을 일본을 거쳐 미국에 온 박영효가 워싱턴에서 그를 만나 다시 귀국을 권했다.

乙未년 戊子월(1895. 12.) 말, 서재필은 아내 뮤리엘과 함께 제물포에 내렸다. 열한 해 만이었다. 며칠 뒤 조선은 음력을 버렸다. 음력 11월 17일이던 날이 양력 정월 초하루가 됐고, 연호는 건양(建陽)이 됐다. 그는 정부의 벼슬 대신 중추원 고문 자리를 받았다. 10년 계약에 달마다 300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정부는 신문 창간 비용과 정착 자금을 합쳐 4400원을 내주었다.

석 달 남짓 뒤 『독립신문』 창간호가 나왔다. 첫 호 첫머리의 광고는 신문 값을 한 장에 동전 한 푼, 한 달에 12전, 1년에 1원 30전으로 적었다. 하루걸러 나오는 신문이었고, 제물포, 원산, 부산, 파주, 송도, 평양, 수원, 강화에 분국을 두었다. 한문으로 쓴 편지는 받지 않는다고도 적었다. 논설은 한문을 쓰지 않고 국문만 쓰는 까닭을, 남녀와 위아래가 모두 읽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말마디마다 띄어 쓰는 것도 알아보기 쉽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300부로 시작한 신문은 얼마 안 가 3000부를 넘겼다.

창간 날의 간지는 해가 丙申, 달이 壬辰, 날이 庚寅이다. 해의 천간 丙은 한낮의 해 같은 불로 辛에게 정관이고,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관성이다. 丙은 일간 辛과 丙辛合(水)을 이뤘다. 둘이 끌어당겨 만드는 기운은 물이다. 辛에게 물은 식상(食傷), 일간이 밖으로 내놓는 말과 글의 기운이다. 달의 壬은 상관이고, 辰은 봄 끝의 젖은 흙으로 정인이다. 날의 간지 庚寅은 갑신정변이 무너진 날의 간지와 똑같다.

丙申년 甲午월 丙辰일(1896. 7. 2.), 서재필은 개화파 관료들과 함께 독립협회를 세우고 고문을 맡았다. 첫 사업은 청나라 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는 일이었다. 날의 천간 丙은 다시 정관이고, 일간 辛과 丙辛合(水)을 이뤘다. 달의 午는 편관이고, 명식의 未와 午未合(火)을 이뤘다. 丙申년 己亥월 戊寅일(1896. 11. 21.), 독립문 기공식이 열렸다. 같은 달 그는 강의를 나가던 배재학당에 학생 토론 모임 협성회(協成會)를 꾸렸다. 그의 세계사 강의를 듣던 학생 가운데 스물한 살의 이승만이 있었다.

“우리는 바른 대로만 신문을 할 터인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펼 터이요, 사사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 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이옴.”

『독립신문』 창간호 논설(서재필 주필)庚寅日 · 丙申年
06

외신

조정 대신들은 그를 불편해했다. 그는 고종 앞에서도 안경을 벗지 않았고, 자신을 외국의 신하라는 뜻의 외신(外臣)이라 불렀다. 독립신문은 관리들의 비리를 보도했고, 러시아와 일본이 이권을 챙기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丁酉년(1897)이 되자 러시아의 간섭이 짙어졌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의 권한을 다졌다. 수구파 관료들은 그가 황제에게 불충한 선동을 한다며 몰아세웠다. 정부는 그를 고문 자리에서 내보내려 했다. 서재필은 남은 계약 기간의 봉급을 받고 떠나는 쪽을 택했다. 그는 독립신문을 윤치호에게, 독립협회를 이상재와 동료들에게 맡겼다.

戊戌년 丁巳월(1898. 5.), 서재필은 아내와 서울에서 낳은 맏딸 스테파니를 데리고 제물포를 떠났다. 서른네 살이었다. 그해의 간지 戊戌은 두 글자 모두 흙, 정인이다. 戊는 명식의 癸와 戊癸合(火)을 이뤘다. 戌은 명식의 丑과 丑戌刑을, 未와 未戌刑을 이뤘다. 명식의 丑과 未에 戌까지 들어와 세 글자가 모두 형으로 묶인 해다. 떠난 달의 간지 丁巳에서 丁은 등불 같은 불로 편관이고, 巳는 정관이다. 巳는 명식의 亥와 巳亥沖을 이뤘고, 해와 날 어느 쪽을 기준으로 봐도 역마다.

그해 늦가을 고종은 독립협회를 없애라는 조칙을 내렸고, 협회 간부 열일곱 명이 붙잡혀 갔다.

07

리틀 시어터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실에서 일했다. 대운은 庚申 대운(1904. 3.~1914. 3.)으로 넘어갔다. 庚과 申은 모두 쇠, 겁재다. 辛은 申에서 제왕(帝旺), 가장 힘이 센 자리에 든다. 庚은 명식의 乙과 乙庚合(金)을 이룬다. 그 무렵 그는 한 살 아래 친구 해럴드 디머와 손잡고 필라델피아에서 문구와 인쇄를 다루는 가게를 꾸렸다. 가게는 뒤에 그의 이름을 단 필립 제이슨 회사가 됐다.

서재필, 1920
庚申년(1920) · 미국에서의 서재필(1920)

쉰 살 무렵 대운은 己未 대운(1914. 3.~1924. 3.)으로 넘어갔다. 己와 未는 모두 흙, 편인이다. 대운의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과 丑未刑을 함께 이룬다. 해와 날 어느 쪽을 기준으로 봐도 未는 화개다.

己未년(1919) 봄, 조선에서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필라델피아에 닿았다. 그는 훗날 메스를 버리고 시험관을 내던진 채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회고했다. 서재필은 가진 재산을 정리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己未년 戊辰월 丙申일(1919. 4. 14.), 필라델피아의 리틀 시어터에서 제1차 한인회의가 열렸다. 미국 여러 주와 런던에서 온 한인 200여 명이 사흘 동안 모였고, 서재필이 의장을 맡았다. 회의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미국 독립선언서가 서명된 인디펜던스 홀까지 행진했다. 그해의 간지 己未는 대운과 똑같다. 해의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 丑未刑을 이뤘다. 날의 천간 丙은 정관이고, 일간 辛과 丙辛合(水)을 이뤘다. 독립협회를 세운 날과 같은 합이 다시 섰다.

회의 뒤 그는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열고 영문 월간지 『코리아 리뷰』를 펴냈다. 플로이드 톰킨스 목사와 함께 미국 곳곳에 한국친우회를 꾸렸다. 워싱턴 군축회의에는 조선의 370여 단체가 서명한 연판장을 내고 독립을 호소했다. 甲子년(1924), 독립운동에 돈을 쏟아붓던 그의 회사는 파산했다.

그해 봄 대운이 戊午 대운(1924. 3.~1934. 3.)으로 바뀌었다. 戊는 정인이고 명식의 癸와 戊癸合(火)을 이룬다. 午는 편관이고 명식의 未와 午未合(火)을 이룬다. 대운의 천간과 지지가 모두 명식과 합해 불을 만드는 10년이다. 乙丑년(1925) 그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 대표로 나섰다. 이듬해 丙寅년(1926) 가을, 예순두 살의 서재필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의과대학에 다시 학생으로 들어갔다. 그 뒤 병리학 논문 다섯 편을 학술지에 실었다.

대운은 丁巳 대운(1934. 3.~1944. 3.)으로 넘어갔다. 丁은 편관, 巳는 정관이다. 명식에 없던 관성이 대운의 천간과 지지를 모두 채운 10년이다. 巳는 명식의 亥와 巳亥沖을 이룬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체스터에 병원을 열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흔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미군 징병 신체검사 의사로 자원했다. 아내 뮤리엘은 해방을 보지 못하고 먼저 숨졌다.

08

인천 부두

대운은 丙辰 대운(1944. 3.~1954. 3.)으로 바뀌었다. 丙은 정관이고, 일간 辛과 丙辛合(水)을 이룬다. 辰은 정인이고, 辛은 辰에서 묘(墓)에 든다. 묘는 무덤이라는 이름 때문에 겁을 주지만, 명리는 기운을 거두어 갈무리하는 자리로 읽는다.

해방이 되자 남한을 맡은 미군정의 하지 사령관이 그를 불렀다. 丁亥년 丙午월 辛巳일(1947. 7. 1.), 미군정청 최고정무관이 된 여든세 살의 서재필이 둘째 딸 뮤리엘과 함께 인천항에 내렸다. 제물포를 떠난 지 49년 만이었다. 부두에서는 김규식과 여운형이 그를 맞았다.

그날 해의 천간 丁은 편관이다. 달의 丙은 정관, 午는 편관이고, 날의 巳는 다시 정관이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불이 해와 달과 날에 걸쳐 네 글자로 들어왔다. 달의 丙은 일간 辛과 丙辛合(水)을, 午는 명식의 未와 午未合(火)을 이뤘다. 날의 천간 辛은 일간과 같은 비견이다. 해의 亥는 명식의 亥와 亥亥自刑을, 날의 巳는 명식의 亥와 巳亥沖을 이뤘다.

戊子년(1948) 여름, 정부 수립을 앞두고 김대중을 비롯한 이들이 그를 초대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겠다며 출마를 청했다. 그는 거절했다. "나는 미국 시민이며 또한 미국 시민으로 머무를 생각이다." 제헌국회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의 이름이 적힌 한 표는 그가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무효가 됐다.

戊子년 辛酉월 己亥일(1948. 9. 11.) 아침, 서재필은 인천에서 다시 미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해의 子는 식신이고, 명식의 丑과 子丑合(土)을 이뤘다. 달의 간지 辛酉는 두 글자 모두 비견이다. 酉는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이뤘다. 날의 亥는 명식의 亥와 亥亥自刑을 이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庚寅년 戊子월 乙巳일(1951. 1. 5.), 서재필은 펜실베이니아 노리스타운의 몽고메리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여든일곱 번째 생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소한 전이라 달의 간지는 아직 戊子이고, 입춘 전이라 해의 간지도 아직 庚寅이다. 해의 寅은 명식의 亥와 寅亥合(木)을, 달의 子는 丑과 子丑合(土)을 이뤘다. 날의 乙은 편재이고, 巳는 정관이다. 巳는 명식의 亥와 巳亥沖을 이뤘다. 해와 날 어느 쪽을 기준으로 봐도 巳는 역마다.

유해는 화장되어 필라델피아 근교에 머물렀다. 丁巳년(1977)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甲戌년(1994) 봄, 필라델피아 웨스트로렐힐 묘지에 있던 그의 유해가 서울로 돌아와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혔다.

그날의 간지

  1. 癸亥년 乙丑월 辛未일(1864. 1. 7.)전라도 동복 문덕(지금의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외가에서 태어났다.태어난 날
  2. 甲申년 乙亥월 戊子일(1884. 12. 4.)우정총국 낙성 잔치에서 김옥균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甲申년 · 정재·겁재
  3. 甲申년 乙亥월 庚寅일(1884. 12. 6.)청군이 창덕궁에 들어와 정변이 사흘 만에 무너졌다.甲申년 · 정재·겁재
  4. 甲午년 庚午월 癸巳일(1894. 6. 20.)워싱턴에서 뮤리엘 암스트롱과 결혼.甲午년 · 정재·편관
    午未合(火) · 일지
  5. 丙申년 壬辰월 庚寅일(1896. 4. 7.)『독립신문』 창간.丙申년 · 정관·겁재
    丙辛合(水) · 일간
  6. 丙申년 甲午월 丙辰일(1896. 7. 2.)독립협회 창립 · 고문을 맡았다.丙申년 · 정관·겁재
    丙辛合(水) · 일간
  7. 丙申년 己亥월 戊寅일(1896. 11. 21.)독립문 기공식.丙申년 · 정관·겁재
    丙辛合(水) · 일간
  8. 己未년 戊辰월 丙申일(1919. 4. 14.)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개막 · 의장.己未년 · 편인·편인
    丑未沖 · 월지 / 丑未刑 · 월지 / 華蓋 未(년지 기준) / 華蓋 未(일지 기준)
  9. 丁亥년 丙午월 辛巳일(1947. 7. 1.)미군정청 최고정무관으로 인천항에 돌아왔다.丁亥년 · 편관·상관
    亥亥自刑 · 년지
  10. 戊子년 辛酉월 己亥일(1948. 9. 11.)인천에서 미국으로 다시 떠났다.戊子년 · 정인·식신
    戊癸合(火) · 년간 / 子丑合(土) · 월지 / 桃花 子(년지 기준) / 桃花 子(일지 기준)
  11. 庚寅년 戊子월 乙巳일절입일(1951. 1. 5.)펜실베이니아 노리스타운의 몽고메리 병원에서 숨졌다.庚寅년 · 겁재·정재
    寅亥合(木) · 년지 / 乙庚合(金) · 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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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未일에 태어난 사람들

78명 모두 보기

존 F. 케네디

丁巳년 乙巳월 辛未일

노바크 조코비치

丁卯년 乙巳월 辛未일

헨리 데이비드 소로

丁丑년 丁未월 辛未일

비베카난다

壬戌년 癸丑월 辛未일

앙리 푸앵카레

甲寅년 戊辰월 辛未일

셀레나

辛亥년 壬辰월 辛未일

시고니 위버

己丑년 癸酉월 辛未일

해리엇 비처 스토

辛未년 甲午월 辛未일

크리스 파인

庚申년 甲申월 辛未일

시린 에바디

丁亥년 丙午월 辛未일

대니얼 크레이그

戊申년 甲寅월 辛未일

대니얼 데이루이스

丁酉년 甲辰월 辛未일

크리스천 베일

癸丑년 乙丑월 辛未일

체스터 베닝턴

丙辰년 辛卯월 辛未일

개인 호

내 명식, 그리고 명식이 닮은 인물들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