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에곤 실레
甲子庚寅生 · 오스트리아 48°20′N 16°04′E · 미술

에곤 실레

戊午년 甲寅월 乙酉일(1918. 2. 7.), 빈 종합병원의 시신 안치실. 스물일곱 살의 에곤 실레가 전날 숨을 거둔 구스타프 클림트의 얼굴을 세 장 그렸다.

2026. 10. 4.

나甲子정인 · 목욕일주
편인壬午상관 · 사월주
편관庚寅비견 · 건록년주
목 2화 1토 0금 1수 2
01

기차역의 큰 나무

빈에서 도나우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간 소도시 툴른, 기차역 건물 위층의 역장 관사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庚寅년 壬午월 甲子일(1890. 6. 12.)의 일이다. 아버지 아돌프 실레는 툴른역의 역장이었고, 어머니 마리는 남보헤미아의 크루마우에서 온 사람이었다. 아이는 위로 누나 둘을 둔 셋째였고, 네 해 뒤에 여동생 게르트루데가 태어났다. 명식은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 여섯 글자로 세우고, 시각을 알면 두 글자를 더한다. 이 기사는 여섯 글자로 읽는다.

에곤 실레, 1893
癸巳년(1893) · 아돌프와 마리 실레, 그리고 에곤·멜라니·엘비라

사주의 주인공 격인 일간(日干, 태어난 날의 천간)은 甲이다. 같은 나무라도 풀과 덩굴에 가까운 乙과 달리, 甲은 한 줄기로 곧게 위를 향하는 큰 나무다. 가지를 옆으로 넓히기보다 하늘 쪽으로 키를 키운다. 태어난 날의 지지는 子, 한겨울의 물이다. 물이 나무를 기르니 甲에게 子는 정인(正印)이 된다. 명리는 일간을 낳는 기운을 인성(印星)이라 부르고, 어머니와 배움의 자리로 읽는다. 일간이 지지마다 쓰는 힘을 열두 단계로 나눈 12운성(十二運星)으로 보면 甲은 子에서 목욕(沐浴)에 든다. 목욕은 이름 때문에 흔히 바람기로만 풀리지만, 명리는 갓 태어난 기운이 처음 몸을 씻고 세상을 겪는 자리로 먼저 읽는다.

태어난 달의 간지는 壬午다. 망종이 들고 일주일이 채 안 된 한여름이었다. 午는 한낮의 불이고, 나무가 불을 낳으니 甲에게는 상관(傷官)이다. 상관은 윗사람을 치는 기운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생각을 말과 표현으로 내보내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甲은 午에서 사(死)에 든다. 사는 이름 때문에 겁을 주지만, 명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기운이 한곳에 가라앉은 자리로 읽는다. 명리가 강약을 가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이 태어난 달인데, 한여름의 불 달은 나무가 제 힘을 꽃과 열매로 쏟아 내는 철이다. 달의 천간 壬은 큰 강물 같은 물로, 甲에게 편인(偏印)이다.

태어난 해의 간지는 庚寅이다. 庚은 무쇠 도끼 같은 쇠, 나무를 치는 기운이라 甲에게는 편관(偏官)이다. 명리는 일간을 누르는 기운을 관성(官星)이라 부르고, 규율과 윗사람, 몸담는 조직의 자리로 읽는다. 寅은 봄을 여는 나무이고, 일간과 오행도 음양도 같은 비견(比肩)이다. 명리는 비견을 어깨를 나란히 한 또 하나의 나로 읽는다. 甲은 寅에서 건록(建祿), 제 힘으로 서는 자리에 든다.

여섯 글자 사이에는 충과 합이 함께 선다. 달의 午와 날의 子가 정면으로 부딪혀 子午沖을 이룬다. 충(沖)은 흔히 깨지는 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자리가 움직이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해의 寅과 달의 午는 寅午半合(火)을 이뤄 불을 보탠다. 반합은 셋이 모여야 서는 삼합 가운데 둘이 모인 합이다. 신살은 하나뿐이다.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해의 寅은 역마(驛馬), 자리를 옮기는 신살이다.

02

기찻길의 소년

소년은 기차에 빠져 자랐다. 역을 드나드는 기차를 몇 시간씩 그렸고, 그림이 학교 공부를 망친다고 여긴 아버지가 스케치북을 없애 버린 일도 있었다. 열한 살에 집을 떠나 가까운 도시 크렘스의 중등학교에 들어갔고, 壬寅년(1902)부터는 빈 북쪽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김나지움에 다녔다. 수줍고 말이 없던 그는 체육과 그림을 빼면 성적이 좋지 않았다.

에곤 실레, 1905
乙巳년(1905) · 소년 시절의 에곤 실레

집안에는 아버지의 병이 드리워 있었다. 아돌프는 매독을 앓았고, 병이 머리까지 번지면서 정신이 흐려지고 발작처럼 화를 내는 날이 잦아졌다. 그는 식구의 생계가 될 철도 주식을 집 안의 타일 난로에 넣어 태웠다. 그 난로는 지금 툴른역의 생가에 놓여 있다.

甲辰년 丙子월 庚子일(1905. 1. 1.), 아돌프 실레가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곤은 열네 살이었다. 넉넉하던 집안은 곧 기울었고, 누나 멜라니가 역의 매표원으로 일하며 식구를 먹여 살렸다. 에곤의 후견은 대부이자 고모부인 레오폴트 치하체크가 맡았다. 그 역시 철도 관리였다.

그날 해의 천간 甲은 일간과 같은 비견이다. 해의 지지 辰은 물기를 머금은 봄의 흙이고, 甲에게 편재(偏財)다. 나무가 흙에 뿌리를 박아 양분을 끌어 쓰듯, 명리는 일간이 다스리는 기운을 재성(財星)이라 부른다. 辰은 명식의 子와 子辰半合(水)을 이뤘고,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화개(華蓋)다. 화개는 흔히 고독으로만 풀리지만, 명리는 학문과 예술에 파고드는 기운으로도 읽는다. 달과 날의 지지는 둘 다 子였고, 두 子는 저마다 명식의 午와 子午沖을 이뤘다.

여섯 글자를 오행으로 세면 나무가 둘(甲·寅), 물이 둘(壬·子), 불과 쇠가 하나씩(午·庚)이다. 흙은 한 글자도 없다. 甲에게 흙은 재성, 나무가 뿌리를 내려 다스리는 기운이다. 옛 명리서는 재성을 재물로 읽었고, 남자의 명식에서는 아내의 자리로도 읽었다.

강약도 저울에 올려 본다. 태어난 날의 子가 나무를 기르는 물이라 일간 곁을 받친다. 그러나 가장 무겁게 다는 태어난 달이 나무의 힘을 빼 가는 한여름의 불이다. 甲일에 올 수 있는 시주 열두 가지를 모두 넣어 보면 여섯은 중화(中和), 넷은 신약(身弱), 둘은 신강(身强)으로 나온다. 시각을 모르는 채로 이 명식을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 이유다. 신약은 흔히 몸이 약하다는 뜻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일간이 명식 안에서 받는 힘이 밀린다는 말이다. 어느 쪽으로 판정하든 빈자리는 흙이다. 이 기사는 그 흙이 해와 달과 날의 간지로 들어온 때를 따라간다.

대운(大運)은 10년마다 바뀌는 운의 흐름으로, 양(陽)의 해에 태어난 남자는 태어난 달의 간지에서 한 칸씩 앞으로 간다. 실레의 첫 대운은 여덟 살에 시작됐다. 아버지를 잃은 날은 癸未 대운(1898. 11.~1908. 11.)의 한가운데였다. 癸는 빗물 같은 물로, 甲을 기르는 정인이다. 未는 한여름 끝의 마른 흙이고 甲에게 정재(正財)다. 명식에 없던 흙이 처음으로 대운의 지지에 들었다. 甲은 未에서 묘(墓), 기운을 거두어 묻어 두는 자리에 든다. 未는 명식의 午와 午未合(火)을 이룬다.

03

아카데미를 나온 해

丙午년(1906), 열여섯 살의 실레는 빈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미술 교사 루트비히 카를 슈트라우흐와 화가 막스 카러가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지원을 도왔다. 조카가 철도 관리의 길을 잇기를 바라던 후견인과는 이 일로 다툼이 잦아졌다. 아카데미에서 그는 크리스티안 그리펜케를의 반에 들었다. 역사화의 전통을 고집하는 보수적인 화가였다.

에곤 실레, 1907
丁未년(1907) · 실레의 그림 「옆모습의 레오폴트 치하체크」(1907)

그해의 간지 丙午는 두 글자 모두 불이다. 丙은 甲이 제 안에서 꺼내 드러내는 식신(食神)이고, 午는 다시 상관이다. 식신은 이름 때문에 흔히 먹을 복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재주가 결과물로 나오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해의 午는 명식의 午와 午午自刑을, 子와 子午沖을, 寅과 寅午半合(火)을 한꺼번에 이뤘다. 같은 글자가 겹칠 때 서는 형(刑)을 자형(自刑)이라 한다. 형은 '형벌'로만 풀려 겁을 주는데, 명리에서는 서로 깎고 다듬는 관계로 먼저 읽는다.

丁未년(1907), 그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직접 찾아갔다. 클림트는 아카데미에 갓 들어간 학생의 드로잉을 사 주고, 제 그림과 바꾸자고 하고, 모델을 구해 주고, 후원자가 될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같은 해 그는 빈 레오폴트슈타트의 쿠르츠바우어 거리 6번지에 처음으로 제 작업실을 얻었다. 丁未의 丁은 상관이고 명식의 壬과 丁壬合(木)을 이뤄 나무를 만들었다. 未는 정재이고 명식의 午와 午未合(火)을 이뤘다. 이듬해 戊申년(1908), 그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의 황제의 방에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그림을 걸었다.

그해 늦가을 대운은 甲申 대운(1908. 11.~1918. 11.)으로 넘어갔다. 甲은 일간과 같은 비견이고, 申은 쇠로서 甲에게 편관이다. 甲은 申에서 절(絶)에 든다. 절은 이름 때문에 끊어져 끝나는 자리로 오해받지만, 명리는 앞의 기운이 끊기고 새 기운을 받을 준비를 하는 자리로 읽는다. 申은 명식의 寅과 寅申沖과 寅申刑을 함께 이루고, 子와는 申子半合(水)을 이룬다. 태어난 해의 寅을 기준으로 申은 역마다.

己酉년(1909) 봄, 스승과의 갈등이 쌓인 끝에 그는 스스로 아카데미를 나왔다. 뜻이 맞는 동기들과 '신미술가 그룹'을 꾸렸고, 클림트의 초대로 빈 국제 미술전 쿤스트샤우에 그림을 걸었다. 그곳에서 그는 에드바르 뭉크와 얀 토롭,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마주쳤다. 비평가 아르투어 뢰슬러가 그를 눈여겨봤고, 수집가 카를 라이닝하우스와 오스카 라이헬을 이어 주었다. 그해 겨울 신미술가 그룹은 빈의 피스코 화랑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己酉년의 己는 기름진 논밭의 흙, 甲에게 정재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흙이 해의 천간으로 들어와 일간과 甲己合(土)을 이뤘다. 합이 만드는 기운도 흙이다. 해의 酉는 쇠, 甲에게 정관(正官)이고,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도화(桃花)다. 도화는 흔히 바람기로만 풀리지만, 명리에서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04

노이렝바흐

辛亥년(1911), 스물한 살의 실레는 열일곱 살의 발리 노이질을 만났다. 발리는 그와 함께 살며 그의 가장 강렬한 그림들 앞에 앉는 모델이 됐다. 두 사람은 숨이 막히는 빈을 떠나 남보헤미아의 소도시 크루마우로 갔다.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다. 그 무렵 그가 가장 즐겨 그린 소재는 크루마우의 옛 시가지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결혼하지 않은 두 사람의 살림과, 마을 아이들이 작업실을 드나드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두 사람은 그해 안에 크루마우를 떠나 빈에서 서쪽으로 35킬로미터 떨어진 노이렝바흐로 옮겼다.

에곤 실레, 1912
壬子년(1912) · 실레의 그림 「회색 옷을 입고 무릎 꿇은 발리」(1912)

辛亥년의 辛은 정관, 亥는 편인이다. 甲은 亥에서 장생(長生), 새로 태어나는 자리에 든다. 亥는 명식의 寅과 寅亥合(木)을 이뤘다.

壬子년 甲辰월 己未일(1912. 4. 13.), 노이렝바흐의 실레가 체포됐다. 집을 나온 십대 소녀가 빈의 할머니에게 데려다 달라고 해 두 사람이 함께 빈에 다녀온 일이 발단이었다. 소녀는 마음을 바꿔 이튿날 함께 노이렝바흐로 돌아왔지만, 그사이 소녀의 아버지가 유괴와 추행으로 그를 고발해 두었다. 경찰은 작업실에서 드로잉 백여 점을 음란물로 보고 압수했다.

재판에서 유괴와 추행 혐의는 기각됐다. 남은 것은 아이들이 드나드는 곳에 에로틱한 그림을 두었다는 혐의 하나였고, 법원은 이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판사는 압수한 그림 한 장을 법정의 촛불에 태웠다. 재판을 기다리며 갇혀 있던 21일에 구류 사흘이 더해졌다. 그는 모두 24일을 감옥에서 보냈다. 갇혀 있는 동안 그는 감방과 제 모습을 수채로 그렸고, 그중 열한 점이 지금 빈의 알베르티나에 있다.

그해의 간지 壬子에서 壬은 편인, 子는 정인이다. 해의 子는 명식의 午와 子午沖을 이뤘다. 달의 간지 甲辰에서 甲은 비견이고, 辰은 편재다. 辰은 명식의 子와 子辰半合(水)을 이루고, 태어난 날의 子를 기준으로 화개다.

05

히칭 중앙로 101번지

壬子년(1912) 가을, 그는 빈 히칭의 히칭 중앙로 101번지에 새 작업실을 얻었다. 근처에 클림트의 작업실이 있었다. 클림트는 그를 수집가들과 화상들에게 이어 주었고, 실업가 아우구스트 레더러 같은 큰 수집가도 그 가운데 있었다. 실레는 이 작업실을 죽기 몇 달 전까지 썼다.

에곤 실레, 1914
甲寅년(1914) · 안톤 요제프 트르치카가 찍은 실레(1914)

癸丑년(1913), 뮌헨의 한스 골츠 화랑이 그의 개인전을 열었다. 甲寅년(1914)에는 사진가 안톤 요제프 트르치카와 함께 초상 사진을 여러 장 남겼다. 같은 해 그는 판화가 로베르트 필리피에게 동판화와 목판화를 배웠다.

작업실 길 건너 히칭 중앙로 114번지에는 하름스 집안이 살았다. 아버지가 자물쇠 장인인 개신교 집안이었고, 에디트와 아델레 두 자매가 있었다. 실레는 甲寅년(1914)에 두 자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이듬해 乙卯년 戊寅월 戊寅일(1915. 2. 16.) 소인이 찍힌 엽서에서, 그는 친구 뢰슬러에게 결혼할 생각인데 상대는 아마 발리가 아닐 거라고 적었다. 실레가 사정을 털어놓자 발리는 곧바로 그를 떠났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 무렵 그린 「죽음과 소녀」에서 남자에게 매달린 여자의 얼굴은 발리를 그린 예전 그림에서 가져왔고, 남자의 얼굴은 새로 그렸다. 그림은 지금 빈의 벨베데레에 있다.

“결혼할 생각이다. 되도록 유리하게. 아마 발리는 아니다.”

에곤 실레, 아르투어 뢰슬러에게 보낸 엽서戊寅日 · 乙卯年
06

부모가 결혼한 날

乙卯년 壬午월 己卯일(1915. 6. 17.), 실레는 빈 도로테어 거리의 개신교 교회에서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했다. 그의 부모가 결혼한 날과 같은 날짜였다. 하름스 집안의 반대도 없지 않았다. 나흘 뒤인 乙卯년 壬午월 癸未일(1915. 6. 21.), 그는 군에 들어가 프라하로 향했다. 에디트도 따라가 프라하의 호텔에 묵었고, 실레는 동료 징집병들과 전시장 건물에서 지냈다.

에곤 실레, 1915
乙卯년(1915) · 실레의 그림 「줄무늬 옷을 입고 앉은 에디트 실레」(1915)

혼인한 날의 달 간지 壬午는 그가 태어난 달의 간지와 똑같다. 날의 천간 己는 정재이고, 일간 甲과 甲己合(土)을 이뤘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정재를 아내의 자리로 읽었다. 명식에 없던 그 흙이 혼인한 날 날의 천간으로 들어 일간과 합을 이룬 셈이다. 해와 날의 卯는 둘 다 겁재(劫財)이고, 저마다 명식의 子와 子卯刑을 이뤘다. 명리는 겁재를 곁에 서서 몫을 나누는 또 하나의 나로 읽는다. 태어난 해의 寅을 기준으로 卯는 도화다. 입대한 날의 未는 정재이고 명식의 午와 午未合(火)을 이뤘다.

丙辰년(1916), 그는 비젤부르크 근처 뮐링의 포로수용소에서 보급 사무를 보는 서기로 일했다. 약한 심장과 반듯한 글씨 덕에 얻은 자리였다. 지휘관은 쓰지 않는 창고를 작업실로 내주었고, 그는 그곳에 갇힌 러시아 장교들을 그렸다. 이 무렵 근처 계곡의 무너져 가는 물방앗간을 그린 「허물어지는 방앗간」은 이 시기 그가 남긴 단 한 점의 유화다.

丁巳년(1917) 그는 빈으로 돌아와, 전선의 장교들에게 물자를 대는 보급소의 서기가 됐다. 상관들은 그가 그림을 그릴 틈을 넉넉히 주었다.

丁巳년 壬子월 辛丑일(1917. 12. 25.), 간호 보조원이 되어 달마티아로 떠났던 발리 노이질이 신이라는 마을의 군 병원에서 성홍열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세 살이었다. 그날 해의 丁은 상관이고 명식의 壬과 丁壬合(木)을 이뤘다. 해의 巳는 명식의 寅과 寅巳刑을, 날의 丑은 명식의 子와 子丑合(土)을 이뤘다.

07

분리파의 중앙 홀

戊午년 甲寅월 甲申일(1918. 2. 6.), 구스타프 클림트가 빈 종합병원에서 쉰다섯 살로 숨졌다. 한 달 전 집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병원에서 독감에 따른 폐렴이 겹쳤다. 이튿날인 戊午년 甲寅월 乙酉일(1918. 2. 7.), 실레는 병원의 시신 안치실에서 클림트의 얼굴을 세 장 그렸다.

에곤 실레, 1918
戊午년(1918) · 실레의 그림 「화가의 아내, 에디트 실레」(1918)

입춘이 지나 해의 간지는 戊午로 바뀌어 있었다. 戊는 산처럼 두꺼운 흙, 甲에게 편재다. 명식에 없던 흙이 이번에는 한 해의 천간으로 들었다. 해의 午는 명식의 午와 午午自刑을, 子와 子午沖을, 寅과 寅午半合(火)을 이뤘다. 클림트가 숨진 날의 간지 甲申은 그 무렵 흐르던 대운의 간지와 같다. 실레가 클림트를 그린 날의 간지 乙酉는 그다음 대운의 간지와 같다.

戊午년(1918) 봄, 빈 분리파의 제49회 전시가 실레에게 중앙 홀을 내주었다. 그는 큰 유화 19점과 드로잉 29점을 걸었고, 그림은 거의 다 팔렸다. 전시 포스터도 그가 그렸다. 긴 탁자에 화가들이 둘러앉은 그림으로,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에서 예수의 자리에 자신을 앉혔다. 벨베데레의 전신인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의 관장 프란츠 마르틴 하버디츨이 「화가의 아내, 에디트 실레」를 사들였다. 공공 미술관이 산 그의 첫 그림이었다. 그 뒤로 그림값이 오르고 초상 주문이 밀려들었다.

재성은 재물의 자리로 읽힌다. 실레의 그림이 처음으로 크게 팔린 해에 그 재성이 해의 천간에 서 있었다.

戊午년 丙辰월 丙午일(1918. 4. 29.)부터 그는 군사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전쟁 그림 전시를 꾸리며 제 그림을 그릴 시간을 얻었다. 戊午년 戊午월 癸丑일(1918. 7. 5.)에는 히칭의 바트만 거리 6번지로 집을 옮겼다. 해와 달의 간지가 모두 戊午였다. 날의 丑은 명식의 子와 子丑合(土)을 이뤘다.

08

사흘

그해 가을 스페인 독감이 빈을 덮쳤다. 戊午년 壬戌월 戊申일(1918. 10. 28.), 임신 여섯 달째이던 에디트가 바트만 거리의 집에서 숨졌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실레도 병을 얻어 처가로 옮겨졌다. 병이 옮을까 두려워한 손님들은 방 문턱에 세운 거울로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이들 가운데 어머니 마리와 누나 멜라니가 있었다. 아내가 떠나고 그가 떠나기까지 사흘 사이에 그는 에디트를 몇 장 그렸다.

에곤 실레, 1918
戊午년(1918) · 실레의 그림 「화가의 어머니」(1918)

戊午년 壬戌월 辛亥일(1918. 10. 31.), 에곤 실레가 히칭 중앙로 114번지의 처가에서 숨을 거뒀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두 사람이 떠난 달의 간지는 壬戌이다. 壬은 편인이고, 戌은 마른 가을의 흙으로 甲에게 편재다. 戌은 명식의 寅·午와 모여 寅午戌三合(火)을 이뤘다. 명식에 반합으로만 서 있던 불이 세 글자를 다 채운 달이다. 에디트가 숨진 날의 申은 명식의 寅과 寅申沖을 이뤘고, 실레가 숨진 날의 亥는 명식의 寅과 寅亥合(木)을 이뤘다. 甲申 대운이 乙酉 대운으로 넘어가기 보름 전이었다.

그는 오버 장크트 파이트 묘지의 아내 곁에 묻혔다. 두 사람의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둘이 사흘 사이에 잇따라 숨져, 그의 작품은 법에 따라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넘어갔다.

庚午년 壬午월 戊申일(1990. 6. 12.), 그가 태어난 지 꼭 100년 되는 날 툴른에 에곤 실레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戊戌년(1898)에 지은 툴른 법원의 옛 구치소 건물을 고친 미술관이다. 남아 있던 감방 하나는 그가 노이렝바흐에서 갇혀 지낸 감방을 본떠 꾸몄다. 그날 달의 간지 壬午는 그가 태어난 달과 혼인한 달의 간지와 같다.

레오폴트 미술관의 「발리의 초상」은 丁丑년 癸丑월(1998. 1.), 뉴욕 현대미술관 전시가 끝난 뒤 뉴욕 지방검찰의 명령으로 압류됐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뒤 화상 레아 본디 야라이가 강압에 못 이겨 넘긴 그림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소송은 열두 해 넘게 이어졌다. 庚寅년 癸未월 辛未일(2010. 7. 20.) 미술관이 본디의 상속인들에게 1900만 달러를 치르기로 합의했고, 그림은 庚寅년 癸未월 戊寅일(2010. 7. 27.) 뉴욕에서 미술관 쪽에 넘겨졌다. 그해의 간지 庚寅은 실레가 태어난 해의 간지와 똑같다.

미술관은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알록달록한 빨래가 널린 집들」을 경매에 내놓았다. 辛卯년 甲午월 戊申일(2011. 6. 22.) 런던 소더비에서 이 그림은 2460만 파운드에 팔렸다. 그때까지 실레의 그림에 붙은 가장 높은 값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제 그림이 언젠가 세계의 큰 미술관마다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날의 간지

  1. 庚寅년 壬午월 甲子일(1890. 6. 12.)툴른역 역장 관사에서 태어났다.태어난 날
  2. 甲辰년 丙子월 庚子일(1905. 1. 1.)아버지 아돌프가 세상을 떠났다.甲辰년 · 비견·편재
    子辰半合(水) · 일지 / 華蓋 辰(일지 기준)
  3. 乙卯년 壬午월 己卯일(1915. 6. 17.)빈에서 에디트 하름스와 결혼.乙卯년 · 겁재·겁재
    乙庚合(金) · 년간 / 子卯刑 · 일지 / 桃花 卯(년지 기준)
  4. 乙卯년 壬午월 癸未일(1915. 6. 21.)군에 들어가 프라하로 향했다.乙卯년 · 겁재·겁재
    乙庚合(金) · 년간 / 子卯刑 · 일지 / 桃花 卯(년지 기준)
  5. 丁巳년 壬子월 辛丑일(1917. 12. 25.)발리 노이질이 달마티아의 신에서 세상을 떠났다.丁巳년 · 상관·식신
    寅巳刑 · 년지 / 丁壬合(木) · 월간
  6. 戊午년 甲寅월 甲申일(1918. 2. 6.)구스타프 클림트가 세상을 떠났다.戊午년 · 편재·상관
    午午自刑 · 월지 / 子午沖 · 일지 / 寅午半合(火)
  7. 戊午년 甲寅월 乙酉일(1918. 2. 7.)시신 안치실에서 클림트를 그렸다.戊午년 · 편재·상관
    午午自刑 · 월지 / 子午沖 · 일지 / 寅午半合(火)
  8. 戊午년 壬戌월 戊申일(1918. 10. 28.)에디트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戊午년 · 편재·상관
    午午自刑 · 월지 / 子午沖 · 일지 / 寅午半合(火)
  9. 戊午년 壬戌월 辛亥일(1918. 10. 31.)빈 히칭의 처가에서 세상을 떠났다.戊午년 · 편재·상관
    午午自刑 · 월지 / 子午沖 · 일지 / 寅午半合(火)
  10. 庚午년 壬午월 戊申일(1990. 6. 12.)툴른에 에곤 실레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庚午년 · 편관·상관
    午午自刑 · 월지 / 子午沖 · 일지 / 寅午半合(火)
  11. 辛卯년 甲午월 戊申일(2011. 6. 22.)「알록달록한 빨래가 널린 집들」이 2460만 파운드에 팔렸다.辛卯년 · 정관·겁재
    子卯刑 · 일지 / 桃花 卯(년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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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갑자일주일간갑목 일간오행토 없음십성인성 발달신살역마살성향도화 발달관계子午沖나라오스트리아분야미술

甲子일에 태어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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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己亥년 壬申월 甲子일

로알 아문센

壬申년 丁未월 甲子일

버지니아 울프

辛巳년 辛丑월 甲子일

에이브릴 라빈

甲子년 癸酉월 甲子일

앙리 뒤낭

戊子년 丁巳월 甲子일

키이라 나이틀리

乙丑년 己卯월 甲子일

살마 하예크

丙午년 丙申월 甲子일

앰브로즈 비어스

壬寅년 丙午월 甲子일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丁卯년 癸丑월 甲子일

야코뷔스 헨리퀴스 판트호프

壬子년 戊申월 甲子일

미리엄 마케바

壬申년 壬寅월 甲子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庚申년 戊寅월 甲子일

앤디 머리

丁卯년 乙巳월 甲子일

클로드 시몽

癸丑년 壬戌월 甲子일

개인 호

내 명식, 그리고 명식이 닮은 인물들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