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巳년 辛丑월 甲寅일(1882. 1. 15.), 시칠리아 팔레르모. 이틀 전 「파르지팔」의 총보를 끝낸 리하르트 바그너가 마흔 살의 오귀스트 르누아르 앞에 앉았다. 초상은 35분 만에 끝났다.
2026. 10. 4.
나庚申비견 · 건록일주
비견庚寅편재 · 절월주
겁재辛丑정인 · 묘년주
寅申沖寅申刑
목 1화 0토 1금 4수 0
01
이른 봄의 쇠
리모주 강베타 대로 71번지, 그때 이름으로는 생트카트린 대로에 있던 재단사 레오나르 르누아르의 집에서 여섯째 아이가 새벽에 태어났다. 辛丑년 庚寅월 庚申일 己卯시(1841. 2. 25. 06:00)의 일이다. 어머니 마르그리트 메를레는 재봉사였고, 일곱 남매를 키우는 집안은 가난했다. 아이의 이름은 피에르오귀스트였다. 명식은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의 간지 여섯 글자로 세우고, 시각을 알면 두 글자를 더한다. 르누아르는 태어난 시각이 새벽 6시로 전하지만, 이 기사는 여섯 글자로 읽고 시주는 따로 짚는다.
사주의 주인공 격인 일간(日干, 태어난 날의 천간)은 庚이다. 같은 쇠라도 다듬어진 보석에 가까운 辛과 달리, 庚은 캐낸 그대로의 원석이나 무쇠 도끼에 가깝다. 두드리고 벼려야 비로소 쓸모가 생기는 쇠다. 태어난 날의 지지는 申, 초가을의 쇠다. 申은 庚과 오행도 음양도 같은 비견(比肩)이다. 명리는 비견을 어깨를 나란히 한 또 하나의 나로 읽는다. 일간이 지지마다 쓰는 힘을 열두 단계로 나눈 12운성(十二運星)으로 보면 庚은 申에서 건록(建祿), 제 힘으로 서는 자리에 든다.
태어난 달의 간지는 庚寅이다. 입춘이 들고 스무 날 남짓 지난 날이었다. 寅은 봄을 여는 나무이고, 庚에게는 편재(偏財)가 된다. 쇠가 나무를 베어 다루듯, 명리는 일간이 다스리는 기운을 재성(財星)이라 부른다. 庚은 寅에서 절(絶)에 든다. 절은 이름 때문에 끊어져 끝나는 자리로 오해받지만, 명리는 앞의 기운이 끊기고 새 기운을 받을 준비를 하는 자리로 읽는다. 명리가 강약을 가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이 태어난 달인데, 봄의 나무 달은 쇠의 제철이 아니다. 달의 천간 庚은 일간과 같은 글자, 또 하나의 비견이다.
태어난 해의 간지는 辛丑이다. 辛은 庚과 같은 쇠이되 음양이 달라 겁재(劫財)다. 명리는 겁재를 곁에 서서 몫을 나누는 또 하나의 나로 읽는다. 丑은 얼어붙은 한겨울의 흙이고, 흙이 쇠를 낳으니 庚에게는 정인(正印)이다. 명리는 일간을 낳는 기운을 인성(印星)이라 부르고, 어머니와 배움의 자리로 읽는다. 庚은 丑에서 묘(墓), 기운을 거두어 묻어 두는 자리에 든다.
여섯 글자 사이에는 충과 형이 함께 선다. 달의 寅과 날의 申이 정면으로 부딪혀 寅申沖을 이루고, 같은 두 글자가 寅申刑도 이룬다. 충(沖)은 흔히 깨지는 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자리가 움직이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형(刑)도 '형벌'로만 풀려 겁을 주는데, 명리에서는 서로 깎고 다듬는 관계로 먼저 읽는다. 신살은 하나뿐이다. 태어난 날의 申을 기준으로 달의 寅은 역마(驛馬), 자리를 옮기는 신살이다.
02
도자기 공방
甲辰년(1844), 아버지는 더 나은 벌이를 찾아 식구를 데리고 파리로 올라갔다. 집안이 자리 잡은 곳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동네였다. 소년은 그림보다 노래에 먼저 재주를 보였다. 생로크 성당의 성가대를 이끌던 작곡가 샤를 구노가 그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재능을 아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음악 공부를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둔 그는 레비 형제의 도자기 공방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庚申년(1860) · 르누아르가 그린 어머니(1860)
솜씨는 금세 늘었지만 같은 무늬를 되풀이하는 일에 자주 싫증을 냈고, 틈이 나면 루브르의 전시실로 피했다. 공방 주인은 견습공의 재주를 알아보고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戊午년(1858), 공방이 기계로 무늬를 찍는 방식을 들이면서 열일곱 살의 일자리가 흔들렸다. 그는 부채에 그림을 그리고, 문장을 새기던 형 앙리를 도와 문장에 색을 칠하고, 해외 선교사들이 쓸 휘장을 그려 학비를 모았다.
여섯 글자를 오행으로 세면 쇠가 넷(辛·庚·庚·申), 나무와 흙이 하나씩(寅·丑)이다. 불과 물은 한 글자도 없다. 庚에게 불은 관성(官星), 쇠를 녹여 모양을 잡는 기운이다. 명리는 이 자리를 규율과 윗사람, 몸담는 조직으로 읽는다. 물은 식상(食傷), 쇠가 제 안에서 내보내는 기운이다. 재주가 결과물로 나오고 생각이 표현으로 드러나는 자리다.
강약도 저울에 올려 본다. 일간 곁에 쇠가 셋이나 섰고, 해의 丑은 쇠를 낳는 흙이다. 그러나 가장 무겁게 다는 태어난 달이 봄의 나무라서 庚의 편에 서지 않는다. 庚일에 올 수 있는 시주 열두 가지를 모두 넣어 보면 여섯은 신강(身强), 여섯은 중화(中和)로 나온다. 신약(身弱)으로 기우는 시주는 하나도 없다. 전하는 대로 새벽 6시의 己卯시를 넣으면 이 명식은 중화 쪽에 선다. 신강은 흔히 기가 세다는 뜻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일간이 명식 안에서 힘을 넉넉히 받는다는 말이다. 어느 쪽으로 판정하든 빈자리는 불과 물이다.
대운(大運)은 10년마다 바뀌는 운의 흐름으로, 음(陰)의 해에 태어난 남자는 태어난 달의 간지에서 한 칸씩 거꾸로 간다. 르누아르의 첫 대운 己丑은 일곱 살에 시작됐다. 공방의 일이 흔들리던 해에 대운은 戊子 대운(1858. 3.~1868. 3.)으로 넘어갔다. 戊는 산처럼 두꺼운 흙, 庚을 낳는 편인(偏印)이다. 子는 한겨울의 물이고, 庚에게 상관(傷官)이다. 상관은 윗사람을 치는 기운으로만 겁을 주지만, 명리는 생각을 말과 표현으로 내보내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명식에 없던 물이 처음 대운으로 들었고, 子는 명식의 申과 申子半合(水)을 이뤄 물을 보탰다. 명식의 丑과는 子丑合(土)을 이룬다.
03
글레르의 화실
壬戌년(1862), 스물한 살의 르누아르는 에콜 데 보자르와 샤를 글레르의 화실을 오가며 그림을 배우고 있었다. 그 화실에서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만났다. 넷은 퐁텐블로 숲으로 함께 나가 그림을 그리며 가까워졌다. 그해의 간지 壬戌에서 壬은 물, 庚이 제 안에서 꺼내 드러내는 식신(食神)이다. 식신은 이름 때문에 흔히 먹을 복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명리에서는 재주가 결과물로 나오는 기운으로 먼저 읽는다. 해의 戌은 명식의 丑과 丑戌刑을 이룬다.
丙寅년(1866) · 르누아르가 그린 리즈 트레오(1866)
甲子년(1864), 살롱이 처음으로 그의 그림을 받아 주었다. 「에스메랄다」라는 그림이었는데, 그는 전시가 끝난 뒤 이 그림을 없애 버렸다. 같은 해 글레르가 화실을 닫자 그도 보자르를 떠났다. 甲子년의 甲은 庚에게 편재이고, 子는 다시 상관이다. 子는 이번에도 명식의 申과 申子半合(水)을 이뤘다.
이듬해 그는 화가 쥘 르쾨르의 집에서 리즈 트레오를 만났다. 리즈는 그 뒤 일고여덟 해 동안 그의 연인이자 가장 자주 그린 모델이 됐다. 戊辰년(1868) 살롱에 걸린 「양산을 든 리즈」는 숲길을 걷는 리즈를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그린 그림이었고, 젊은 비평가 에밀 졸라가 이 그림을 칭찬했다.
그해 대운은 丁亥 대운(1868. 3.~1878. 3.)으로 바뀌었다. 丁은 불, 庚을 누르는 정관(正官)이다. 亥는 물, 庚이 낳는 식신이다. 명식에 한 글자도 없던 불과 물이 대운의 천간과 지지로 나란히 들어온 10년이다. 亥는 명식의 寅과 寅亥合(木)을 이루고,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역마다.
己巳년(1869) 여름, 그는 모네와 함께 센강의 물놀이터 라 그르누이에르에 나가 나란히 이젤을 세웠다. 둘이 같은 장면을 그린 그림이 지금도 짝을 이뤄 남아 있다. 바깥에서 빛과 물을 그리던 두 사람은 그림자의 색이 갈색이나 검은색이 아니라 둘레의 사물이 비친 색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르누아르는 그 뒤로 그림자를 검은색으로 칠하지 않았다. 그해의 巳는 불, 庚에게 편관(偏官)이고, 庚은 巳에서 장생(長生), 새로 태어나는 자리에 든다. 巳는 명식의 申과 巳申合(水)과 巳申刑을 함께 이루고, 寅과는 寅巳刑을 이룬다.
庚午년(1870), 프로이센과 전쟁이 터지자 그는 징집되어 기병대에 배속됐고 보르도와 타르브에서 지냈다. 큰 병을 얻어 보르도에서 입원했고, 이듬해 봄에야 제대했다. 바지유는 주아브 연대에 들어갔다. 庚午년 丁亥월 戊辰일(1870. 11. 28.), 본라롤랑드 전투에서 지휘관이 다치자 공격을 이끌던 바지유가 두 발을 맞고 숨졌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르누아르는 파리로 돌아와서야 친구의 죽음을 들었다.
그날 해의 지지 午와 달의 천간 丁은 둘 다 庚을 누르는 정관이다. 午는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도화(桃花)다. 도화는 흔히 바람기로만 풀리지만, 명리에서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으로 먼저 읽는다.
04
카퓌신 대로 35번지
癸酉년 甲子월 癸丑일(1873. 12. 27.), 살롱 밖에서 그림을 보이려던 모네와 시슬레, 드가, 피사로, 베르트 모리조, 르누아르가 제 손으로 전시를 열 회사를 세우는 서류에 서명했다. 이름을 정할 때 르누아르와 드가는 어느 화풍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 밋밋한 이름을 원했고, 회사는 '화가·조각가·판화가 무명 협회'가 됐다.
壬申년(1872) · 르누아르의 그림 「정원에서 양산을 든 여인」(1872)
甲戌년 戊辰월 壬寅일(1874. 4. 15.), 사진가 나다르가 쓰던 카퓌신 대로 35번지 작업실에서 협회의 첫 전시가 문을 열었다. 서른 명 남짓한 화가가 그림을 걸었고, 르누아르는 「특별석」과 「무희」, 「파리 여인」을 냈다. 입장료는 1프랑이었다. 한 달 동안 들어온 관객은 3500명 남짓으로, 같은 해 살롱을 찾은 40만 명에 비하면 한 줌이었다.
카탈로그는 르누아르의 동생 에드몽이 엮었다. 모네가 낸 그림 제목이 다 비슷하다고 에드몽이 불평하자, 모네는 그냥 '인상'이라고 붙이라고 답했다. 열흘 뒤인 甲戌년 戊辰월 壬子일(1874. 4. 25.), 풍자 신문 「르 샤리바리」에 비평가 루이 르루아의 글이 실렸다. 제목은 「인상주의자들의 전시」였다. 비웃으려고 붙인 그 말이 이 화가들의 이름이 됐다.
전시가 열린 날의 간지 壬寅에서 壬은 물, 庚에게 식신이다. 명식에 없던 물이 그날 날의 천간으로 들었다. 寅은 태어난 날의 申을 기준으로 역마이고, 명식의 申과 寅申沖과 寅申刑을 이뤘다. 르루아의 글이 실린 날은 壬子였다. 壬은 식신, 子는 상관으로 두 글자 모두 물이고, 子는 명식의 申과 申子半合(水)을 이뤘다. 해의 간지 甲戌에서 戌은 다시 명식의 丑과 丑戌刑을 이룬다.
전시는 돈을 남기지 못했다. 그해 겨울 르누아르가 회원들을 불러 빚이 3700프랑을 넘는다고 알렸고, 협회는 문을 닫았다. 회원마다 185프랑씩을 더 내야 했다.
乙亥년 己卯월 乙酉일(1875. 3. 24.), 르누아르의 제안으로 모네, 모리조, 시슬레와 함께 드루오 경매장에 그림을 내놓았고, 르누아르는 그중 스무 점을 냈다. 낙찰가는 경매 비용도 채우지 못했고, 가장 높은 480프랑은 모리조의 그림에 붙었다. "보자르 학생들이 한 줄로 늘어서 행진하며 항의했고, 경찰이 나서야 했다." 르누아르는 그날을 이렇게 돌아봤다. 출판인 조르주 샤르팡티에가 이 경매에서 「낚시하는 사람」을 비롯한 그의 그림 세 점을 샀다. 훗날 그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는 사람이다.
그날의 해와 날의 천간은 모두 乙이었다. 乙은 庚에게 정재(正財)이고, 명식의 두 庚과 각각 乙庚合(金)을 이룬다. 날의 酉는 庚이 제왕(帝旺), 가장 힘이 센 자리에 드는 글자이고, 태어난 날의 申을 기준으로 도화다. 酉는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이뤘다. 해의 亥는 다시 식신이다.
05
썩어 가는 살
丙子년 辛卯월 辛丑일(1876. 4. 3.), 「르 피가로」에 비평가 알베르 볼프의 글이 실렸다. 뒤랑뤼엘의 화랑에서 열린 두 번째 인상주의 전시를 두고 쓴 글이었다. "르누아르 씨에게 여자의 몸통은 썩어 가는 살덩이가 아니라고 설명 좀 해 보라. 시체가 완전히 썩었을 때 드러나는 초록빛과 보랏빛 얼룩이 박힌 살덩이 말이다." 볼프가 겨냥한 것은 햇빛을 받는 여자의 상반신을 그린 그림이었다.
己卯년(1879) · 르누아르의 그림 「샤투의 뱃사공들」(1879)
그해의 간지 丙子에서 丙은 불, 庚을 누르는 편관이다. 丙은 명식의 辛과 丙辛合(水)을 이뤄 물을 만들었다. 子는 상관이며 명식의 申과 申子半合(水)을 이뤘다. 글이 실린 날의 간지 辛丑은 그가 태어난 해의 간지와 똑같다.
그해 그는 몽마르트르 코르토 거리 12번지에 버려진 정원이 딸린 작업실을 빌렸다. 언덕 위의 무도장 물랭 드 라 갈레트가 가까웠다. 일요일 오후면 파리의 노동자들이 차려입고 와서 저녁까지 춤추고 술을 마시고 갈레트를 먹던 곳이다. 그는 화가 친구들과 몽마르트르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들을 모델로 세웠다. 丁丑년(1877) 봄 세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가 걸렸다. 동료 화가이자 후원자인 귀스타브 카유보트가 이 그림을 샀고, 그가 죽은 뒤 그림은 국가의 것이 됐다.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조금 작은 다른 판본은 庚午년 辛巳월 壬午일(1990. 5. 17.)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7800만 달러에 팔렸다. 그 무렵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 두 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날 해와 달과 날의 지지는 午와 巳와 午, 명식에 없던 불이 세 자리를 채웠다.
대운은 丙戌 대운(1878. 3.~1888. 3.)으로 넘어갔다. 丙은 편관, 戌은 庚을 낳는 편인이다. 丙은 명식의 辛과 丙辛合(水)을 이루고, 戌은 명식의 丑과 丑戌刑을 이룬다. 庚은 戌에서 쇠(衰), 한창때를 지나 힘을 고르는 자리에 든다.
인상주의 친구들과 전시해서는 그림이 팔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살롱에 그림을 내기로 했다. 샤르팡티에가 천 프랑에 주문한 「샤르팡티에 부인과 아이들」은 戊寅년(1878) 가을 한 달 만에 완성됐다. 사교계에 발이 넓던 샤르팡티에 부인의 힘으로 이 그림은 己卯년(1879) 살롱에서 좋은 자리에 걸렸고, 르누아르는 초상화 주문이 끊이지 않는 화가가 됐다. 己卯년의 己는 庚을 낳는 정인이고, 卯는 庚에게 정재다.
06
라파엘로의 방
庚辰년(1880), 그는 몽마르트르에서 일하던 스무 살 남짓의 재봉사 알린 샤리고를 만났다. 센강 가 샤투의 식당 메종 푸르네즈 발코니에서 친구들을 그린 「뱃놀이 일행의 점심」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여자가 그다. 辛巳년(1881) 그는 들라크루아가 그린 땅을 보러 알제리로 가고, 벨라스케스를 보러 마드리드에 들렀다. 그해 끝 무렵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피렌체에서 티치아노를, 로마에서 라파엘로를 봤다. 바티칸의 라파엘로 방에서 그는 자기가 인상주의의 끝에 와 있다고 느꼈다.
庚辰년(1880) · 르누아르의 그림 「뱃놀이 일행의 점심」(1880~1881)
이탈리아를 돌던 끝에 그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바그너를 만났다. 辛巳년 辛丑월 甲寅일(1882. 1. 15.), 바그너는 35분 동안 앉아 있었고 르누아르는 그 자리에서 초상을 마쳤다. 바그너는 이틀 전 「파르지팔」의 총보를 끝냈다. 초상은 지금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입춘 전이라 해의 간지는 아직 辛巳다. 해와 달의 천간 辛은 둘 다 겁재이고, 해의 巳는 편관이자 庚이 장생에 드는 자리다. 날의 간지 甲寅은 두 글자 모두 편재다. 寅은 명식의 申과 寅申沖과 寅申刑을 이뤘고, 태어난 날의 申을 기준으로 역마다.
「뱃놀이 일행의 점심」은 壬午년(1882) 봄 일곱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걸려 비평가 셋이 전시에서 가장 좋은 그림으로 꼽았다. 같은 해 그는 폐렴을 앓아 호흡기를 상했고, 알제리에서 여섯 주 동안 몸을 추슬렀다.
癸未년(1883) 무렵 작업에 금이 갔다고 그는 훗날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에게 털어놓았다. 그해의 癸는 물, 庚에게 상관이다. 해의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과 丑未刑을 이룬다. 그는 윤곽선을 또렷하게 긋고 색을 차갑게 쓰기 시작했다. 丁亥년(1887) 파리 조르주 프티의 화랑에서 선보인 「목욕하는 여인들」에는 혹평이 쏟아졌고, 그는 이 방식을 접었다.
乙酉년 己卯월 乙亥일(1885. 3. 21.), 파리 우동 거리 18번지에서 알린이 첫아들 피에르를 낳았다. 둘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이였다. 르누아르는 그리던 그림을 밀어 두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알린을 그렸다. 그날은 해와 날의 천간이 모두 乙, 정재였다. 옛 명리서는 남자의 명식에서 정재를 아내의 자리로 읽었다. 두 乙은 명식의 두 庚과 각각 乙庚合(金)을 이뤘다. 해의 酉는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날의 亥는 명식의 寅과 寅亥合(木)을 이뤘다.
“내 작업에 금 같은 것이 갔다. 인상주의를 끝까지 가 보고 나서, 나는 그릴 줄도 데생할 줄도 모른다는 걸 알았다. 한마디로 막다른 길이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르누아르』庚申年07
아버지와 같은 날
대운은 乙酉 대운(1888. 3.~1898. 3.)으로 바뀌었다. 乙은 정재, 酉는 겁재다. 乙은 일간과 乙庚合(金)을 이루고, 庚은 酉에서 다시 제왕에 든다. 酉는 태어난 날의 申을 기준으로 도화이고,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이룬다.
乙未년(1895) · 에드가 드가가 찍은 르누아르와 스테판 말라르메
그 무렵부터 둘은 알린의 고향인 샹파뉴 지방 에수아에서 지내는 날이 늘었다. "파리의 비싼 모델을 피해 샹파뉴에서 농사꾼처럼 지내고 있어요.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자들을 그립니다." 그는 베르트 모리조에게 이렇게 적었다. 庚寅년 庚辰월 乙丑일(1890. 4. 14.), 마흔아홉 살의 르누아르는 파리 9구 구청에서 서른 살의 알린과 결혼했다. 피에르가 다섯 살이 된 해였다.
해의 간지 庚寅은 그가 태어난 달의 간지와 똑같다. 寅은 다시 명식의 申과 寅申沖을 이뤘다. 날의 乙은 정재이고, 명식의 두 庚과 각각 乙庚合(金)을 이뤘다. 대운의 천간에 선 정재가 혼인한 날에는 날의 천간으로도 들었다. 날의 丑은 태어난 해의 지지와 같은 글자다.
壬辰년(1892) 그는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그렸다. 국가가 그림을 사려 한다는 것을 알고 같은 구도를 여러 번 그렸고, 그중 한 점을 국가가 사들여 뤽상부르 미술관에 걸었다. 그가 마침내 인정받은 그림으로 꼽힌다. 같은 무렵 그의 몸에서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시작됐다.
甲午년 癸酉월 庚申일(1894. 9. 15.) 밤, 몽마르트르 지라르동 거리 13번지의 집에서 둘째 아들 장이 태어났다. 훗날 「위대한 환상」과 「게임의 규칙」을 찍은 영화감독이다. 날의 간지 庚申은 르누아르가 태어난 날의 간지와 같다. 60일에 한 번 돌아오는 간지가 아버지와 아들이 태어난 날에 겹쳤다. 해의 午는 정관이고 명식의 寅과 寅午半合(火)을 이뤘다. 달의 酉는 대운의 酉와 같은 글자이고, 명식의 丑과 酉丑半合(金)을 이뤘다.
丙申년(1896) 그는 에수아에 집을 샀다. 쉰다섯 살에 처음 가진 제 집이었다.
08
콜레트의 올리브 나무
대운은 甲申 대운(1898. 3.~1908. 3.)으로 넘어갔다. 甲은 편재이고, 申은 일간과 같은 쇠, 비견이다. 庚은 申에서 건록에 든다. 申은 명식의 寅과 寅申沖과 寅申刑을 이룬다.
甲寅년(1914) · 작업실의 르누아르
辛丑년 乙未월 甲寅일(1901. 8. 4.), 에수아에서 셋째 아들 클로드가 태어났다. 르누아르는 예순 살이었다. 해의 간지 辛丑은 그가 태어난 해의 간지와 같다. 60갑자가 한 바퀴를 돌아 태어난 해의 기둥이 그대로 돌아온 해였다. 날의 간지 甲寅은 바그너를 그린 날과 같다. 달의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을 이뤘다.
癸卯년(1903), 가족은 따뜻한 남쪽 카뉴쉬르메르로 옮겼다. 丁未년 丙午월 戊申일(1907. 6. 28.), 그는 카뉴 언덕 중턱의 콜레트 땅 3헥타르를 샀다. 오래된 올리브 나무들이 베어질 처지라는 말을 듣고 그 나무를 지키려고 산 땅이었다. 집은 알린이 짓는 일을 맡았고, 가족은 이듬해 가을 새집으로 들어갔다.
해의 丁, 달의 丙과 午는 모두 불이다. 丁과 午는 정관, 丙은 편관이다. 명식에 없던 불이 한 해와 한 달 동안 세 글자로 들었다. 丙은 명식의 辛과 丙辛合(水)을, 午는 명식의 寅과 寅午半合(火)을 이뤘다. 날의 申은 태어난 날의 지지와 같은 글자다.
이듬해 대운은 癸未 대운(1908. 3.~1918. 3.)으로 바뀌었다. 癸는 상관, 未는 庚을 낳는 정인이다. 庚은 未에서 관대(冠帶), 갓을 쓰고 세상에 나서는 자리에 든다.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과 丑未刑을 이룬다.
관절염은 해마다 깊어졌다. 그가 붓을 손에 묶고 그렸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는 붓을 쥘 수 있었고, 조수가 손에 붓을 끼워 주었다. 사진 속 손에 감긴 붕대는 살갗이 짓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癸丑년(1913)부터 戊午년(1918)까지는 젊은 조각가 리샤르 기노가 그의 손이 되어 「승리의 비너스」 같은 조각을 빚었다.
乙卯년 壬午월 己丑일(1915. 6. 27.), 알린이 니스의 셋집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쉰여섯 살이었다. 셋째를 낳은 뒤 생긴 당뇨를 남편에게 숨겨 왔고, 두 달 전에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장을 보러 보주 산지 제라르메의 병원까지 다녀왔다. 해의 乙과 卯는 모두 정재다. 乙은 명식의 두 庚과 각각 乙庚合(金)을 이뤘다. 아내의 자리로 읽는 정재가 아이를 얻은 날과 혼인한 날에 이어 아내를 보낸 해에도 들었다. 달의 午는 정관이고 명식의 寅과 寅午半合(火)을 이뤘다. 르누아르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알린의 그림을 바탕으로 기노에게 무덤 장식의 본을 빚게 했다.
대운은 壬午 대운(1918. 3.~1928. 3.)으로 넘어갔다. 壬은 식신, 午는 정관이다. 丁亥 대운 이후 50년 만에 명식에 없던 물과 불이 대운의 천간과 지지로 함께 들었다. 午는 명식의 寅과 寅午半合(火)을 이루고,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도화다.
己未년 乙亥월 己丑일(1919. 12. 3.) 새벽, 르누아르는 콜레트의 집에서 폐충혈로 세상을 떠났다. 일흔여덟 살이었다. 해의 未는 명식의 丑과 丑未沖과 丑未刑을 이뤘다. 달의 乙은 정재이고 명식의 두 庚과 각각 乙庚合(金)을 이뤘다. 달의 亥는 명식의 寅과 寅亥合(木)을 이루고, 태어난 해의 丑을 기준으로 역마다. 날의 丑은 다시 태어난 해의 지지와 같은 글자다.
죽기 며칠 전까지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임종을 앞둔 자리에서 창가의 꽃을 그리겠다며 붓을 청했고, 붓을 돌려주며 "이제야 뭔가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는 니스의 묘지에 아내 곁에 묻혔다가, 壬戌년(1922) 함께 에수아로 옮겨졌다. 관절염으로 굳은 손으로 왜 아직 그리느냐는 물음에 그가 했다는 대답도 전한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그날의 간지
辛丑년 庚寅월 庚申일(1841. 2. 25.)리모주에서 재단사의 여섯째로 태어났다.태어난 날
甲戌년 戊辰월 壬寅일(1874. 4. 15.)카퓌신 대로 35번지에서 첫 인상주의 전시 개막.甲戌년 · 편재·편인 丑戌刑 · 년지